[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얼마 전 애플 본사에서 일하던 전직 직원을 만났을 때다. 애플, 구글 등 미국계 IT 기업들의 자율 출퇴근과 회사와 사생활의 분리, 마음대로 휴가를 쓰는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에 대한 얘기로 접어들자 그가 말했다.
"한국 기업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애플과 구글 임직원들이 얼마나 일을 많이 하는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잠자는 시간을 빼 놓고는 항상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의무적으로 정해진 시간을 일하는 것과는 다르다. 실리콘밸리의 혁신은 자기가 스스로, 성과를 위해서 개인의 모든 자원을 쏟아 붓고 있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이 말을 듣자 최근 전해들은 얘기 하나가 생각났다. 국내서 최초로 자율출퇴근제를 전면 실시하고 나선 삼성전자다. 실제 자율출퇴근제가 실시됐지만 일부 임원들이 부하직원들에게 이를 이행하지 않도록 했다는 것이다.
당시 그 얘기를 들을 때 해당 임원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팀으로 일을 해야 되는 상황에서 너도 나도 자율출퇴근을 하겠다면 조직의 생산성이 크게 떨어지지 않을까? 빠진 사람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
비슷한 질문을 하니 돌아오는 답은 간단했다. 일의 책임 소재와 기한을 명확히 해 놓으면 자율출퇴근이나 장기간 휴가라 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일이다.
장시간이 걸리는 일을 시켜 놓고 내일 당장 결과를 내 놓으라고 독촉하는 일도 없고 책임 소재가 명확하다 보니 자리를 비운다 해도 급한 업무가 있으면 휴가지에서라도 업무를 처리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철저한 성과주의와 신상필벌의 원칙이 지켜지다 보니 혹여 장기간 휴가를 다녀오면 책상이 없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기우도 자연스럽게 없어진다는 것이다.
일에 대한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과거 우리 기업들이 누군가를 쫓아가기 위해서는 기계적 성실성과 근면함이 미덕이었다. 경쟁자 보다 더 오랜 시간 사무실에 앉아있고 그들의 동향을 항상 면밀하게 살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앞서가기 위해선 창의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기계적으로 사무실에 앉아 있는 대신 일할 때 일하고 쉴 때는 쉬면서 머릿속을 정리해야 할 때다.
과거 삼성전자의 해외 법인에 입사한 외국인들의 퇴사 사유 1위는 기업문화 때문이었다. 회사 보다 개인을 더 중요시하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회사를 위해 일하는 그들에게 개인 보다 회사를 중요시해야 한다는 한국식 기업문화를 주입하려 한 결과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하며 기업문화를 바꾸고자 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과거에는 채용한 외국인들을 삼성의 기업문화에 적응시키려 했다면 이제는 삼성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의전문화를 개선하고 나서며 고위 임원들이 특권처럼 누리던 의전들을 없애고 독하게 일한 뒤 개인과 가족을 위해 휴식을 누리는 기업문화를 지향하고 있다. 최근 삼성 전자계열사의 사장급 이상 최고경영자(CEO)들의 해외 법인 근무를 지시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본사의 기업 문화를 해외 법인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해외 법인의 기업 문화를 본사에 적용해 보자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제 우리 기업들도 변해야 한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일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새로운 성장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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