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 카 성능 측정, 관리하는 직군
수학·물리학·컴퓨터 과학 지식 총동원
F1에만 존재…IT, 자동차 산업서 환영
세계 최대의 모터스포츠 포뮬러 1(F1)은 시속 300~400㎞에 달하는 레이스 카로 스피드를 겨루는 경주 대회다. 자동차보다는 차라리 비행기에 더 가까워 보이는 레이스 카는 하나하나가 정밀 기계공학과 항공동체역학의 정수다.
이런 레이스 카를 유지보수하고, 경주 중 기계 부속이 '최고의 컨디션'을 발휘하도록 책임지는 몫은 '크루'들에게 달려 있다. 이들은 직접 차량을 모는 선수들과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임하는 동등한 팀원들이다. 특히 이들 가운데 '퍼포먼스 엔지니어'는 새로운 직업군으로 부상하고 있다.
1분1초가 아까운 레이스 카 성능 측정
F1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레이스 카와 드라이버이지만, 사실 엔지니어들의 역할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각 F1 팀은 수백명에 달하는 전문 엔지니어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매년 F1 대회에 참가할 새로운 레이스 카를 조립하고 테스트한다.
F1 레이스 카는 1~2만개의 정밀 부품으로 이뤄진 복잡한 기계이며, 각 부품은 매년 대회마다 F1 주최 측의 특수한 규제에 맞춰 만들어지는 커스텀 제작품이다. 이런 부품을 하나하나 수급해 조립한 뒤 성능을 테스트하는 건 엔지니어들의 몫이다. 이런 과정에서 탄생한 직업군이 F1의 '퍼포먼스 엔지니어'다.
'퍼포먼스'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해당 직군은 차량의 '성능'을 측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단순한 부품 테스트에 그치는 게 아니다. 실제 경주용 차가 트랙 위를 달릴 때 엔진이 최고 효율을 내고 있는지, 서스펜션에 이상은 없는지 등을 모니터링하는 일도 이들의 몫이다. 이를 위해 레이스 카 부품에 직접 센서를 달아, 매초 차량 내부 데이터를 분석하고 감시하기도 한다.
이들의 데이터 분석 능력과 기계를 조율하는 역량은 차량 속도와도 직결되며, 매년 1분1초 차이로 1, 2위가 결정되는 치열한 F1 경주의 핵심 인력이다.
전 세계서 오직 F1에만 있는 직업…IT·항공우주서도 환영
퍼포먼스 엔지니어의 시작은 F1 정비사들이었지만, 이제 이들의 능력은 다른 업계에서도 환영받고 있다. 오늘날 퍼포먼스 엔지니어는 F1의 고향이자 '글로벌 수도'라 할 수 있는 영국에 집중됐는데, 해당 산업군을 대표하는 '모터스포츠 밸리'에 따르면 영국 내 퍼포먼스 엔지니어 수는 약 4만명에 달하며, 이들이 창출하는 수익은 연간 100억파운드(약 18조원)를 훌쩍 넘는다.
퍼포먼스 엔지니어의 전문성은 항공우주공학, IT, 자동차, 통신 등 다른 영역으로 확산한다. 강력한 엔진, 서스펜션, 스티어링 휠을 디자인한 경험은 자연스럽게 자동차 기업들의 연구개발(R&D)로 연결되며, 이들이 축적한 항공역학 노하우는 비행기 날개나 동체 설계에도 유용하게 쓰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퍼포먼스 엔지니어가 최근 들어 활약하는 분야는 IT와 통신이다. F1 팀들이 레이스 카를 관리하기 위해 구축한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는 데이터센터나 클라우드 효율화에도 접목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퍼포먼스 엔지니어는 이제 막 급성장하기 시작한 '신생 직업군'이라는 점에 매력이 있다. 오늘날 F1 기업들이 군집한 영국 중부 지역엔 일명 '모터스포츠 밸리'라는 산업 단지가 있는데, 이곳에 위치한 여러 대학은 F1과 퍼포먼스 엔지니어들을 위한 다양한 학과를 제공한다. 비단 자동차 공학과뿐만이 아니라 수학, 물리학 등 기초 과학을 배운 인재도 F1에선 좋은 대우를 받는다.
F1의 인기가 영국, 미국 등 일부 선진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이들의 연봉은 IT 직군 못지않게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커리어 전문 매체 '모르선 탤런트' 등에 따르면, 퍼포먼스 엔지니어의 초봉은 4만5000~6만5000파운드(약 8190~1억1830만원)이며, 수년간 근무한 베테랑 엔지니어들은 17만5000파운드(약 3.2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다고 한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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