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2015년 4월19일. 핀란드 수도 헬싱키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타고 외곽으로 가던 중 '마이크로소프트' CI가 붙어 있는 유리 건물을 발견했다. 십여년을 헬싱키에서 살았다는 가이드 레베카씨는 무덤덤하게 얘기했다. "예전에는 이곳이 노키아 본사 건물이었지만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된 후 건물도 통째로 넘어 갔습니다. 인수되던 날 핀란드 사람들은 매우 슬퍼했지만 이후 주가가 많이 올라 뒤로는 웃었다고 합니다."
노키아가 무너졌을 때 세계는 핀란드 경제의 몰락을 점쳤다.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40%를 차지했던 노키아가 핀란드 경제에서도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성기였던 2000년대 초반 노키아는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4%를 담당했고 수출은 20%나 책임졌었다. 이런 기업이 외국에 팔릴 정도가 됐으니 핀란드 경제가 받은 충격도 컸다. 실제 핀란드의 경제성장률은 -8.5%(2009년)까지 떨어졌다.
핀란드인들은 이런 상황을 전화위복으로 삼았다. 세계적 대기업을 잃은 대신 다양한 소기업을 기반으로 경쟁력을 강화했다. 노키아는 쇠락했지만 우수한 IT(정보기술) DNA의 세포 분열은 멈추지 않았다. IT와 금융을 합친 '핀테크'를 선도하는 기업들이 줄지어 나왔다. 노키아에서 금융서비스를 담당하던 이들이 나와 만든 '미스트랄 모바일', 전 유럽에서 온라인 지급결제를 제공하는 '홀비', 모바일 대출 서비스를 유럽 20개국에서 실행하고 있는 '페라툼' 등 핀란드 기업들은 유럽 핀테크계를 이끌고 있다.
이 같은 강소기업들의 약진 뒤에는 기업과 정부가 만들어 놓은 창업 생태계가 자리 잡고 있다. 핀란드 창업 지원기관 '테케스'는 대기업이 활용하지 못했던 기술을 중소기업에 지원하는 프로그램 '이노베이션 밀'을 진행한다. '알토기업가정신센터'는 벤처기업의 지적재산권 등록, 특허 획득 등을 지원해준다. 노키아 재단은 해고 직원들을 위한 '브릿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창업 지원금을 제공하고 창업팀 구성과 컨설팅 지원에 도움을 줬다.
노키아가 망했지만 핀란드 국민이 웃을 수 있었던 까닭은 단단한 창업 생태계 덕분이다. 우리 생태계는 과연 어느 수준까지 견딜 만큼 단단할까.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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