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15세기 중반 유럽의 강대국이었던 포르투갈, 스페인, 영국, 프랑스는 차례로 대규모 함대를 조직해 바다 곳곳을 누비면서 자신들의 식민지를 건설했다.
이들은 식민지 원주민들을 잡아다 노예로 부리며 광물을 채굴하고, 공산품과 향신료, 농산물을 생산해 유럽에 되팔아 막대한 부(富)를 챙겼다.
수없이 잔인한 비극들이 이 식민시대에 벌어졌지만 양심의 가책은 전혀 느끼지 않았다. 유럽 사람들이 보기에 식민지의 원주민들은 자신들과 평등한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감히 불만을 제기하거나, 공정한 협상을 요구할 수 없는 그저 수탈의 대상에 불과했다.
수년전 우리나라에서 영업을 하고 있던 한 외국계 은행에서 직원들의 90%가 파업을 시작했다. 당시 영국인 은행장과 부행장들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노조는 외국인 경영진들이 자신들을 동등한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결과는 사측의 승리로 끝났다.
외국계 기업, 그중에서도 외국인 경영진이 있는 기업들은 종종 노사 문제에서 심각한 약점을 드러낸다. 한국적 정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커녕, 아예 눈과 입을 닫은 채 '본사방침'만 고수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위스키 임페리얼과 발렌타인을 국내 시장에 판매하고 있는 페르노리카코리아의 노사협상에서도 이같은 문제는 재연됐다. 20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조정 결과에 따라 페르노리카는 한국 진출 이후 처음으로 총파업에 직면했다.
왜 이같은 일이 벌어진걸까. 우리나라 기업에서 노사갈등이 벌어진다면 경영진들이 앞에 나서서 빈말이라도 서로 좋은 얘기를 주고받기 마련이다. 소통에 대한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하지만 페르노리카의 장 마누엘 스프리에 사장은 노조와 12번의 협상테이블에 한 번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집중 교섭기간에는 해외 출장을 떠나버렸다. 장 마누엘 사장은 한국에서 돈은 벌었지만 그가 평소 '빈머리(empty head)'라고 말했던 한국 직원들과 동등한 협상테이블에 앉기는 싫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상대가 자신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할 때 가학적인 힘의 논리를 서슴없이 드러낸다. 수백년전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무역도 이런 차별적인 수직 관계위에서 이뤄졌다.
페르노리카는 수년째 한국 위스키시장에서 만년 2위에 머물고 있는 회사다. 한국 주류 시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영진의 전략때문에 2위 자리마저 골든블루에 넘겨주기 일보직전이다.
한국에서의 위치는 위태롭지만 대주주 배불리기는 계속되고 있다. 이 회사는 장 마누엘 사장이 취임한 이후 지난 4년 동안 국내 위스키 시장이 침체됐음에도 불구, 꾸준히 가격을 올렸다. 이렇게 번 돈 중 1000억원 가량을 본사로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돈은 본사 임원들의 연봉과 고급 승용차 구입에 쓰였다고 한다. 여기에 최근 탈세혐의로 200억원 수준의 과징금까지 부과받았다.
장 마누엘 사장은 오늘도 직원들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있다. 행여 한국을 15세기 식민무역 상대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프랑스인' 사장의 속내가 자못 궁금하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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