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일찍이 무의(毋意)ㆍ무필(毋必)ㆍ무고(毋固)ㆍ무아(毋我)를 언급하면서 공자의 이른바 절사(絶四)를 신념과 같은 경구로 삼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하는 족족 유의(有意)에 유필(有必)이며 유고(有固)이자 유아(有我)인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이 '사사로운 뜻을 갖은 일이 없고(무의) 기어코 억지를 부리지도 않으며(무필)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는 일도 없이(무고) 사사로움에 집착해 자신만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무아)'는 자절사(子絶四)를 어쩌면 그렇게 정반대로 행하는지 의아스러웠다. 벌써 여러 해 전 일이지만 지금도 그 사람에 대한 저간의 평판은 여전한 듯하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그 명제만큼이나 쉽게 변하지 않는다. 만고의 진리까지는 아니지만 최소한 내 자신이나 내 주변 사람들은 이 범주에 들어가는 것 같다.
이 명제는 뭇 사람들의 인물평(評)에 자주 등장한다. 우직한 뚝심으로 뚜벅뚜벅 원칙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칭찬으로 쓰이는가 하면, 다른 이의 말에 귀를 닫고 자신만의 고집과 아집으로 살아갈 때는 비난의 방편으로 인용되기도 한다. 확대하면 이 명제는 조직과 나라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숙연해야 할 지금 온 나라가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라는 블랙홀에 빠져있다. 망자(亡者)를 욕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금품을 제공한 메모와 녹취를 남겨 본인 스스로 금품 제공의 장본인임을 인정했다. 성 전 회장은 정계 입문 전부터 인맥과 로비로 사업을 일궈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자서전 '새벽빛'에는 이런 정황을 유추할만한 구절이 나온다. "모든 사회생활을 주고받는 관계라고 규정할 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는 것이 앞서야 한다는 점이다. 먼저 주어야 나중에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먼저 주고 나중에 받되, 줄 때는 겸손하게 받을 때는 당당하게, 이것이 내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의 원칙이다."
자서전으로 보자면 성 전 회장도 쉽게 변하지 않은 사람이다. 성 전 회장의 이런 철학을 감안하면 '겸손하게' 준 것을 나중에 '당당하게' 받으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던 것 아니냐는 의문도 든다.
리스트에 오른 8명이 모두 전전긍긍하고 있는 가운데 이완구 국무총리가 그 정점에 서 있다. 연일 보도되고 있는 금품수수 의혹에 대해 이 총리는 '목숨'까지 거론하며 배수진을 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 정황이 하나둘 나올 때마다 이 총리의 말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의혹이 일면 일단 부정ㆍ부인하고 보는 정치인의 습성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문제는 사실 여하를 떠나 이미 국민은 이 총리에 대한 믿음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대통령을 보필해 국정 2인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힘들어진 이유다.
지난해 오늘(16일) 온 국민이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을 목도하면서 슬픔과 분노에 휩싸였다. 1주기인 오늘 만큼은 자숙하고 반성하면서 다시는 그런 비참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야 하건만 불행하게도 우리에겐 그런 침잠(沈潛)마저도 사치인가 보다. 한 해 전이나 지금이나 국민 마음은 여전히 답답하다.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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