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교향악단, 단원 전적 놓고 법정공방으로…서울시향, 미국 투어 취소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오케스트라의 생명은 '조화'다. 음악 이전에 지휘자와 단원들간의 신뢰와 존중이 바탕이 되어야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한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두 곳은 불협화음으로 가득하다. 조직 내 갈등, 구조조정 및 예산삭감 등을 둘러싼 마찰과 잡음으로 오케스트라의 본질인 음악 활동마저 어려움을 겪고 있다. KBS교향악단은 단원들의 소속 변경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결국 법정싸움으로 번졌다. 전(前) 대표의 막말 파문을 시작으로 한바탕 내홍을 겪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은 4월로 예정된 미국 투어를 끝내 취소했다.
◆ 법정에 간 KBS교향악단 노사갈등
KBS교향악단은 지난 22일 제692회 정기연주회(26, 27일)의 프로그램을 급하게 바꿨다. 파울 힌데미트의 '베버 주제에 의한 교향적 변용'은 '하이든 교향곡 제88번'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 작품40'은 '베토벤 교향곡 제1번'으로 각각 교체됐다. 이날 무대에는 새로 뽑은 객원 연주자들과 재단법인 소속 단원 서른두 명이 함께 선다. 단원이 아흔아홉 명에서 57명으로 줄면서 대규모 편성이 필요한 곡 대신 소편성 음악으로 대체한 것이다.
재단법인 KBS교향악단으로 전적(轉籍)하기를 거부한 KBS 소속 단원 예순일곱 명은 지난 12일부터 회사 연수원에서 직무재배치 교육을 받고 있다. 노조는 "단원들이 오케스트라 연주와 무관한 콜센터 실습을 교육받고 있다"고 주장한 반면 사측은 "전체 교육 프로그램 중에 '수신료 콜센터 체험'은 두 시간에 불과하며, 교육과 체험은 엄연히 다른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이에 KBS 소속 단원들은 사측의 직무 전환 방침에 반발해 법적 대응에 나섰다. KBS노조는 23일 법원에 사측을 상대로 직무전환교육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재단법인을 상대로 신규단원 채용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접수했다. 여기에 재단법인이 다시 KBS 노조에 항의서한을 보내고, "채용 업무에 지장이 발생할 경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맞불을 놓았다.
KBS교향악단의 내부 갈등이 촉발된 시기는 2012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KBS교향악단을 재단법인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사측은 단원들에게 KBS를 퇴사하고 '재단법인 KBS교향악단'으로 재입사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단원들이 완강하게 전적을 거부하자 임시방편으로 2014년 9월9일까지 2년간 파견 형식으로 재단법인에 근무하도록 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그동안 입장차는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노조는 현 상황을 유지하며 '파견 연장'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법인화와 동시에 KBS 내에는 교향악단 직무가 없어졌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홍석우(39) KBS노조 대변인은 "전적을 해도 인건비 절감 효과도 없으며, 현 구조를 유지해도 회사가 손해를 볼 이유는 없는데 굳이 사측이 단원 전적만을 요구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국은 이번 기회에 KBS가 교향악단을 털어버리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KBS소속 단원들의 업무 교육은 4월 8일까지다. 사측은 전적 동의서를 이날까지 받겠다고 다시 못을 박았다. 이들의 불협화음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 최대 위기 맞은 재단법인 10주년 서울시향
미국의 뉴욕타임즈는 지난 23일 '서울시향이 내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Seoul Philharmonic Orchestra Racked by infighting)'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내며 최근 벌어진 사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해 세계적인 클래식음악축제인 영국 런던 'BBC프롬스'에 데뷔하며 호평을 받은 서울시향이 다음 달 있을 미국 투어 일정을 전면 취소했기 때문이다. 서울시향은 내달 14~24일 정명훈(61) 예술감독의 지휘로 워싱턴, 시카고 등 미국 도시 일곱 곳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다.
순회공연을 한 달 앞두고 취소 결정을 내린 이유는 예산 때문이다. 서울시향은 지난해 말 2015년도 예산 편성 과정에서 서울시에 이번 투어 사업비 책정을 요청했으나 시의회의 심의 과정에서 승인을 받지 못했다. 지난 해 말 박현정(52) 전 대표의 막말 논란이 정명훈 감독의 처우 문제 등으로 번지면서 서울시향에 대한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된 것이 결정타였다. 여기에 기업들도 후원을 꺼려 협찬도 확보하지 못했다. 미국 투어는 이미 관람권의 65% 가량이 팔린 상태였다. 앞서 1월 신년 간담회에서 정 감독은 "북미 투어를 못가면 세계무대에서 '펑크 내는 오케스트라'라고 창피를 당할 것"이라고 했는데,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서울시향은 올해로 재단법인 10주년을 맞았다. 2005년 정 감독을 영입하면서 10년간 총 관람객수가 다섯 배 이상 늘었다. 유료관객 비율은 10년 전 38.9%에서 지난해 92.9%로 뛰었다. 25일에는 서울시향의 '진은숙 3개의 협주곡' 음반이 2015년 '국제클래식음악상' 현대음악 부문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세계적으로도 음악성을 인정받고 있다. 정 감독은 "예전엔 공짜표를 줘도 관객들이 오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매번 공연이 매진된다. 우리 시향이 아시아 넘버원이 됐다"고 자부했지만, 일련의 사태로 이 성과마저 빛이 바랬다.
서울시향 단원협의회는 최근 발표문을 통해 "악의적 공격과 억측들이 끊이지 않고 있고, 미디어에서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박무일(58) 서울시향 단원협의회 대표는 "음악 외적인 것으로 구설에 오르다보니 이미지가 많이 실추됐다. 미국 투어 취소는 최근 사태로 나타난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 그동안의 성과마저 물거품이 되는 상황에 대해 단원들이 마음 아파한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대외적인 상황 때문에 시향의 연주력이 갑자기 떨어지지는 않는다. 부디 오케스트라를 경제 논리, 혹은 정치적 이슈로 판단하지 말아달라. 우리는 정 감독의 음악적인 부분을 계속 신뢰하고 따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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