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별선수권 크로스컨트리 3관왕 이채원…나이 잊은 금빛 질주
"임신 9개월까지 스키 탔네요"
"금메달 60개 어딨는지 몰라요"
"다섯 번째 올림픽 도전, 남편 덕이죠"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잠시나마 딸내미와 신나게 놀아야겠어요."
이채원(34ㆍ경기도체육회)은 국내 여자 크로스컨트리의 최강자다.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에서 12일 끝나는 전국종별선수권대회에서 3관왕(5㎞ 클래식ㆍ10㎞ 프리ㆍ복합)을 달성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끝난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도 5㎞ 클래식ㆍ15㎞ 계주ㆍ10㎞ 프리ㆍ복합 등 4관왕을 이루고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개인 통산 세 번째 영예였다. "조금 특별한 수상이었어요. 체력 회복이 더뎌져서 어려움이 많거든요. 나이를 실감하고 있죠."
설원에서 지친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양쪽 스키를 평행으로 고정하고 양손에 쥔 폴(중심을 유지하고 추진력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긴 막대)을 이용해 정해된 코스로 향하는 클래식은 물론 스케이트를 타듯 폴을 이용해 좌우로 치고 나가서 상대적으로 체력 소모가 많은 프리에서도 무섭게 질주한다. "지난여름 체력을 끌어올리는데 신경을 많이 썼어요. 대관령과 진천선수촌의 도로에서 롤러 스키를 미친 듯이 탔죠." 웨이트트레이닝과 산악훈련까지 마치면 몸은 늘 녹초가 됐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악바리 같은 성격으로 버텼다. 그의 집념에 대표팀 선수들이 혀를 내두른다. 임신 9개월에도 폴을 잡고 설원을 20㎞ 이상 달렸다. "겨울운동라 평소 훈련감각을 익힐 기회가 많지 않아요. 경기 공백으로 국제스키연맹(FIS) 포인트가 부족하면 올림픽 출전 길도 막히고요. 대표팀 코치, 선수들에게 임신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었어요."
이토록 엄청난 노력 덕에 이채원은 10년 이상 국내 정상을 지켰다. 1996년부터 출전한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 올해까지 금메달 예순 개를 땄다. 나가기만 하면 3~4관왕을 기본으로 했다. "금메달 예순 개요? 어디에 뒀는지 까먹었어요. 집안 어딘가에 있겠죠. 저번에 우연히 발견한 메달은 변색됐더라고요. 보기 흉했어요."
온갖 영예에 무덤덤해질 정도로 시간이 흘렀지만 경기력은 최근 2년 사이 약진했다. 꾸준한 몸 관리로 근력과 지구력ㆍ심폐지구력이 더 좋아졌다. 2017년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을 넘어 2018년 안방에서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 출전을 꿈꾸고 있다. 이미 네 차례 올림픽을 경험한 그는 "5회 연속 올림픽 출전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세웠다. 후배들에게도 좋은 선배로 남고 싶다"며 "남편의 내조와 주위의 격려로 힘을 내고 있다"고 했다.
폴을 놓지 않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격차를 줄이고 싶어 한다. 이채원은 올림픽에서 항상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30위권 진입이 목표였는데 실패했거든요. 2018년 대회가 안방에서 열리는 만큼 조금이라도 등수를 올리고 싶어요." 그래서 그는 다가오는 휴식기간을 딸 장은서(4) 양과 신나게 즐길 생각이다.
"전국체육대회에서 은서가 '엄마, 아프지마'라고 외치는데 가슴이 찡하더라고요. 그동안 못해 준 게 너무 많아요. 후배의 어머니께서 대신 키우거든요. 전지훈련을 가기 전까지 한두 달 동안 재밌는 추억을 만들어야죠.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고 다시 열심히 달릴게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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