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가 어제 취임 후 처음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성과가 부진한 장차관의 해임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공직자의 무사안일과 부처 이기주의가 문제라고 질타하고 기관장에 대한 감독부터 강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특히 정부 기관장의 노력과 성과를 상시 점검하고, 연 2회 종합평가를 벌여 기강이 해이하고 성과가 부진한 기관의 장차관과 청장은 인사 조치하겠다고 경고했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도 그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내각에 힘을 실어 주는 발언을 했다. 따라서 이 총리의 이 같은 경고가 제대로 작동된다면 공직사회 쇄신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헌법과 법률에 의해 주어진 국무위원 해임건의권과 지휘감독권을 엄정하게 행사한다면 책임총리로서의 위상 확립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이다.
하지만 법대로 하겠다는 이 총리의 당연한 말을 들으면서도 과연 그렇게 될까, 관기를 잡으려는 엄포용은 아닌가하는 일말의 의구심이 드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총리가 엄정하게 장관 해임건의권한을 행사하려면 몇 가지 중요한 전제가 필요하다. 장차관을 바라보는 이 총리의 시각부터 전임자들과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장차관이나 공기관장이 책임지고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여건부터 조성해야 한다. 중앙 부처가 애써 만든 정책이 청와대에서 뒤엎어지고 부처의 국ㆍ과장급 인사까지 청와대에서 챙기는 사례가 그동안 비일비재했다.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의 원인은 일하는 곳이 두드려 맞는다는 공직자들의 경험적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자율성과 권한은 없는데 책임을 엄하게 묻겠다는 것은 코미디다.
객관적이고 명확한 기관장 평가 기준을 확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남북관계나 한일관계가 개선되지 않는다고 통일부와 외교부 장관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가.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면 국토교통부 장관이 잘한 것이고, 수출이 호조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공인가.
넘어야 할 관문은 또 있다. 대통령이 발탁한 장관을 총리가 해임하라고 건의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법적인 권한이 있어도 그동안 총리의 장관해임건의권이 제대로 행사되지 않은 근본적 이유의 하나다. 박 대통령이 총리에 힘을 실어주면서 유연성을 발휘했을 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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