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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흥부가 들려주는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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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흥부가 들려주는 오래된 미래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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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의 '땅콩 리턴' 사건은 한 대기업 및 그 재벌가의 뒤틀린 행태뿐만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의 일그러진 민낯을 보여줬다. 그에 대한 비판은 한국 자본주의의 새로운 모델, 자본가의 바람직한 전형에 대한 요청과 탐구로 이어지고 있다. 그럴 때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인물이 아마 유일한 박사일 것이다. 얼마 전에도 어느 방송에서 그를 소개한 것을 계기로 유일한의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외아들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넘겼고 죽음을 앞두고는 자신의 주식을 학교에 기증하고 외아들에게는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라'는 유서를 남겨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에 대한 얘기는 사실 새로울 게 없다. 오히려 모범적인 경영자를 얘기할 때면 늘 그의 이름이 나오니 오히려 진부한 얘기처럼 들릴 정도다. 그를 거듭 불러내고 떠올려야 하는 이 상황이 유일한과 같은 존재의 희귀함을 보여주는 것인지 모른다.

나는 유일한이 아닌 다른 인물을 새로운 자본가형으로 제시해 보려고 한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지만, 실은 잘 모르는 인물이다. 바로 '흥부'다. 흥부에서 새로운 자본주의의 미래를 찾는 운동을 전개하는 김영호 전 산업자원부 장관에 따르면 흥부는 착한 자본가이며, 생태주의자이며, 박애주의자다. 제비의 생명을 살린 선행으로 큰 재물을 얻었지만 흥부는 그걸 혼자 다 차지하지 않고 가난한 이웃을 도운 박애주의자며 착한 자본가다. 제비를 해치려 한 구렁이조차 죽이지 않고 놓아준 '생명운동가'이다.


그래서 김 전 장관과 그와 뜻을 같이하는 이들은 매년 봄이면 흥부의 삶과 철학을 실천하는 이 시대의 흥부의 후예들을 찾아가는 기행을 20년 가까이 떠나고 있다.

흥부기행은 무엇보다 '반성의 여행'이다. 흥부를 죽이고 업신여겼던 것에 대한 반성이며 흥부의 잃어버린 명예를 복권시키는 운동이다. 한때 우리가 흥부는 게으르고 타성에 젖었으며 책임도 지지 못하면서 자식들만 무조건 낳고 본 부정적인 인간형인 반면 놀부를 부지런히 부를 일군 자본주의 정신의 구현자로 재평가했던 것에 대한 반성이다. 흥부를 몰아내고 놀부를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받든 것에 대해 회개하는 기행이다.


한편으로는 '살림의 기행'이다. 우리가 흥부를 죽이면서 함께 죽여버렸던 '우리 안의 흥부'를 되살리는 기행이다. 우리 안의 인간성과 덕성, 배려심을 되살리는 생명의 여행이다. 흥부의 품성과 인간성, 삶의 태도에 지금의 우리 사회 문제 해결의 해답, 미래의 전망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여행이다.


흥부기행은 흥부가 박을 켜서 보물을 얻었듯 '대박'을 터뜨린 사람들을 찾는다. 그러나 이 대박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못 벌고가 기준이 아니다. 무엇보다 흥부의 마음처럼 그 바탕에 인본과 휴머니즘이 살아 있어야 한다. 또한 대박은 세간에서 말하는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큰 돈을 버느냐 못 버느냐를 기준으로 성공 아니면 실패로 구분 지어 버리는 이분법을 따르지 않는다. 그 사업이 보여주는 가능성, 우리 사회가 지켜주고 키워줘야 할 가치가 있느냐, 지금은 어렵고 실패한 듯 보여도 북돋워주고 응원을 보내주면 상당한 성취를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한다.


지난해 세월호 사고로 취소됐던 흥부기행은 올해 다시 길을 떠날 것이다. 흥부를 재발견하고 바로 알기 위한 이 기행은 새로운 삶, 새로운 사회, 우리의 미래상에 대한 모색이다. '이웃 간에 화목하고, 친구에게 믿음이 있으며, 장마 때 큰 물가에 삯 안 받고 건네주고, 막깨어난 벌레를 죽이지 않고, 자라는 초목을 꺾지 않는' 흥부의 마음에서 우리 사회의 오래된 미래'를 찾아본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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