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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2014년 13월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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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2014년 13월에 부쳐 김동선 기획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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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외모와 달리 고리타분하게 음력으로 기념일을 챙긴다. 제사부터 생일까지 대소사를 모두 음력으로 삼고 있는 집안 내력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본의 아니게 네 번의 생일을 기념했다. 맨 처음은 일면식도 없는 미국의 젊은 기업가 마크 저커버그가 알려줬다. 내 음력 생일을 아무런 변환 없이 숫자 그대로 생일인양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해를 거르지 않는 이 알람 덕분에 지난해에도 많은 지인들로부터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음력을 잘 모를 것으로 짐작되는 서양인 저커버그에게 멘션(SNS에서 @ 뒤에 특정인을 지목해 언급하는 것)을 달아 페이스북에도 음력이 작동되도록 해달라고 넌지시 말을 건넸지만 바쁜 것인지 어쭙잖은 질문을 이해 못 한 것인지 그는 아직 답이 없다.

두 번째는 아내의 미역국이 알려준 '진짜 생일'이었다. 기대도 안 했지만 아내는 본인 자체가 선물이라며 생일 선물 따위는 없다고 선언했다. 세 번째는 몇몇 혁신적인 회사의 문자 메시지였다. 이들은 태어난 해의 음력을 양력으로 변환해 나도 모르는 내 진짜 양력 생일을 알려주며 즐거운 생일을 보내라는 스팸을 날려왔다. 여기까지는 연례행사이려니 하고 있는데 뜻밖의 생일이 한 번 더 찾아왔다. 지난해 음력 9월은 윤달이었던 것이다. 윤 9월은 아주 드문 경우라고 한다. 9월 윤달은 조선 순조 32년인 1832년 이후 무려 182년 만에 찾아온 것이란다. 생애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아주 특별한 이 때를 놓칠세라 미역국으로 때웠던 아내를 졸라 생일선물을 뜯어내는 데 성공했다.


새삼 지난 생일 얘기를 꺼내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 기회를 주는(또는 주어지는)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그것도 신의 영역에 버금가는 시간을 돌려주는 것이니 고마움 그 이상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이라는 게 나이의 제곱에 비례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쏜살이다. 연말연시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하고 후회하며 산다. 그런데 1년 중 요맘때는 그런 후회를 만회할 기회를 준다.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도 달포 남짓 '묵은 해'를 보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 해를 반성하고 새해를 준비할 시간을 한 번 더 덤으로 얻는 셈이다.

지난해 봄 우리는 세월호 참사 앞에 무기력함과 슬픔과 분노를 교차해 느꼈으며 그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연말에는 삐딱한 진보에 회초리 대신 사형선고를 내린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보면서 '나는 당신의 말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겠다'던 볼테르적 시각은 이 땅에 없음을 목도했다. 또 부족한 세수 확보를 위해 담뱃값을 대폭 올리면서도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옹색한 변명으로 에두르는 정부를 안쓰럽게 지켜봤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땅콩 리턴'으로 지탄을 받은 한 재벌 3세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될 일로 남았다.


그래서일까 지난 연말은 연말 같지 않았다는 사람들이 많다. 가슴 속에 무엇인가 먹먹함이 남아 개운치 않은 탓이리라. 새해 벽두 프랑스에서는 언론사에 대한 '조준 테러'로 표현 자유에 경종이 울렸고, 의정부 아파트 화재는 지난해 초 경주 마우나리조트 사고처럼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다시 도마에 올렸다. 해가 바뀌었지만 정작 바뀐 게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무려 1개월여나 남은 또 다른 '새해'에 기대어보자. 지난 연말 미처 안부를 잊었다면 새해인사를 겸해 보자. 금연이건, 공부건, 취미건, 작심삼일로 끝난 새해 결심이 있다면 마음을 다잡는 것도 좋겠다. 아울러 사과할 일이 있거든 마음을 담아 사과하고 후회할 건 처절하게 후회하고 반성할 건 철저하게 반성해야겠다. 사회 시스템은 점검하고 또 점검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느 가수가 12월 32일이라고 33일이라고 한 해를 보내지 못했던 것처럼, 아쉬움과 미련과 책망 때문에 진정 새해를 맞이할 수 없을 것 같다. 2014년 13월이라고 또 14월이라고.






김동선 기획취재팀장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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