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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왜 ‘민주주의 후퇴’ 우려 담았을까

정당해산 결정 부작용 헌재도 인식…법리적 논거 둘러싼 국내외 평가 작업 본격화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판결이다.”


한국천주교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69)는 성탄절 미사에서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결정을 비판했다.

고위 성직자가 헌재 결정을 놓고 ‘지록위마’라는 평가를 한 것은 그 자체로 뉴스가 될 사안이다. 대법원과 더불어 사법부 ‘최고 권위’를 자처하는 헌재 입장에서는 불쾌하면서도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강 주교는 천주교 교황방한위원장을 맡았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발언에 실린 무게감도 남다르다. 강 주교 발언 이전에도 고위 성직자의 공개 비판이 있었다.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성탄메시지를 통해 “이번 판결처럼 다름이 곧 틀림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면 대화문화가 정착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고위 성직자들이 사법부 판단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통진당 정당해산 결정을 찬성하는 쪽 입장에서는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는 대목이다.


고위 성직자들은 헌법재판관보다 법률적인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고위 성직자들이 논란을 무릅쓰고 공개비판을 실행에 옮긴 이유는 무엇일까.


강우일 주교나 김희중 대주교의 메시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우려다. 헌재가 정당해산을 결정한 것이 최선이었는지, 다른 대안은 없었는지 성찰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흥미로운 부분은 헌재 결정문에도 ‘민주주의 후퇴’를 걱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헌재는 왜 ‘민주주의 후퇴’ 우려 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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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정당해산 결정문을 통해 “우리 재판소는 이 결정으로 인해 우리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진보정당의 활동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있음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정당해산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굴곡의 한국 현대사에서 단 한 차례도 정당해산 결정이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통진당 행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들 중에서도 정당해산 결정을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그러한 판단에는 국민 상식과 괴리된 정강정책을 지닌 정당이라면 결국 선거에서 국민에게 버림을 받게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헌재도 정당해산만이 해법이 아니라는 점은 알고 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세계적으로 볼 때 정당해산제도가 없는 국가들도 많다.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 그리고 설득과 같은 민주적 방식이야말로 헌법의 근본 질서를 파괴하려는 정당을 제어하고 그들의 정치적 기반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헌재가 효과적인 수단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당해산을 결정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피청구인(통진당) 주도세력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면서 적극적이고 계획적으로 우리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를 공격해 이를 훼손하거나 궁극적으로 폐지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시급한 이유가 있었다는 얘기다. 헌재는 정치적 판단이 아닌 법리적인 판단을 하는 기관이다. 헌재가 정당해산을 결정한 것은 ‘통진당=북한식 사회주의 추구 정당’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등식의 증명은 헌재의 몫이다. 헌재가 정당해산을 결정하면서 347쪽에 이르는 방대한 결정문을 남겼지만, 탄탄한 법리적 논거를 통해 정당해산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비판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헌재 결정 이후 이어지는 법조계 토론회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지적됐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3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법과사회이론학회’ 등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숨은 목적이라는 논증은 정당의 강령 등을 토대로 해 정당의 목적을 파악하는 논증이 아니라 결국에는 정당 주요 인사들의 사상적 가치관을 재단해 평가하는 결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헌재 결정으로 정당해산 자체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됐다. 하지만 헌재 결정의 법리적 논거를 둘러싼 평가 작업은 이제 시작이다. 국내 법조계는 물론 ‘베니스위원회’ 등 세계 권위의 헌법재판 기관들도 검증 작업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검증 결과에 따라 헌재 결정에 대한 여론의 평가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헌재 결정은 ‘민주주의 후퇴’를 부른 위험한 판단이었을까, 헌법 수호를 위한 고뇌어린 결정이었을까.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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