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지난 9일 국회, 오후 2시13분에 시작한 본회의는 오후 6시 폐회선언 때까지 138개 법안을 표결처리했다. 법안과 상관없는 국회의원 신상발언 등을 모두 포함해도 법안 1건이 평균적으로 1분39초 만에 처리된 셈이다.
최빈곤층 복지정책의 근간을 바꾸는 내용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관피아 근절의 일대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공직자윤리법',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선장에게 무기징역을 내릴 수 있는 '선원법' 등 주요 법안이 전광석화처럼 처리됐다.
국회의원들은 이처럼 빠르게 표결되는 법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 재선 의원은 "의원들이 찬성을 눌러야 할 지 반대를 눌러야 할 지 모를 때가 되면 소관 상임위 간사가 어떤 입장을 취했는 지를 보고난 뒤 표결을 한다"고 귀띔했다. 제각각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스스로의 판단을 유보한 채 당론 따르기 아니면 눈치보기로 투표에 임한다는 것이다.
100건이 넘는 법안을 한꺼번에 표결처리하는 것은 66년 의정사를 돌아볼 때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풍경이다. 17대 국회 이후부터 100여건의 법안을 처리하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총 8번의 무더기 법안 통과가 있었다. 과거 국회에서는 한 본회의에서 많아야 70건, 평균적으로 20~30건의 법안을 처리했었다.
무더기 법안 처리가 이뤄지는 이유는 다뤄야 할 법안 건수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제헌 국회의 경우 회기 내내 148건의 법안을 처리했지만 18대 국회는 2353건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더 크게 달라진 것은 법안에 대해 임하는 국회의원들의 법안에 대한 이해도다. 100여건의 법안이 한꺼번에 표결처리될 경우 개개 의원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법안 내용 전체를 파악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나마 상정되는 법안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소관 상임위원, 아니면 그보다 적은 숫자인 상임위 법안소위원회 위원들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법안을 처리하면 그 내용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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