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 경영' 체제..창업주 차남 허은철, 대표이사 승진
R&D 이끌며 백신 북미 공급…해외영업 강화 GM본부 신설
[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 백신 전문 제약사 녹십자가 2세 경영 체제로 돌입했다. 녹십자는 창업주 고(故) 허영섭 전 회장의 차남 허은철 부사장(42·사진)을 최근 인사에서 대표이사로 승진시켰다. 허 부사장은 다음 달 1일부터 녹십자 경영 전반을 진두지휘한다.
서울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한 허 신임 대표는 같은 대학에서 생물화학공학과정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직후인 1998년 곧바로 녹십자 경영기획실에 근무하며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1년 뒤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 코넬대학교에서 식품공학과 박사 과정을 마친 뒤, 목암생명공학연구소 기획관리실에서 근무하며 녹십자의 미래 먹거리 개발에 나섰다.
이후 녹십자 R&D기획실로 자리를 옮겨 입사 2년 만에 상무로 승진한 뒤 전무를 거쳐 녹십자 최고기술경영자(CTO) 자리에 올랐다. 허 신임 대표가 CTO로 재직하던 시절 개발된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는 세계에서 두 개밖에 없는 희귀의약품이다. 그는 입사 이후 줄곧 의약품 연구개발(R&D) 분야를 이끌며 신약 개발에 주력해왔다. 올해 녹십자의 R&D 분야 투자는 매출의 10%에 달한다. 녹십자 관계자는 "R&D 분야는 성과가 즉각 나타나지 않는다"면서 "허 신임 대표가 R&D를 총괄하면서 점진적으로 지원을 늘리는 틀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입사 이후 줄곧 기술개발 분야에서 내공을 쌓은 허 신임 대표는 지난해 부사장으로 승진, 녹십자의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경영 일선에 나섰다. 그는 지난 1년간 생산과 영업, R&D 등 경영 전반을 이끌며 경영 실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지난해 북미지역 백신 공급 등 해외 수출을 대폭 늘린 점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녹십자는 현재 창업주의 동생인 허일섭 회장이 이끌고 있다. 허 신임 대표의 작은 숙부다.
녹십자는 이번 인사와 함께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특히 해외영업 강화를 위해 글로벌 마케팅(GM) 본부를 신설했다. 국내시장의 경우 건강보험제도로 인해 안정적인 성장은 가능하지만 글로벌 제약사로 거듭나는 데는 한계가 분명한 만큼 이번 조직개편을 통해 해외 진출 의지를 대내외에 알린 셈이다. 전산과 홍보 등 지원부서는 녹십자홀딩스로 이관, 영업부문도 일부 조직을 변경해 변화하는 제약산업에 맞추도록 했다.
업계 관계자는 "녹십자의 향후 숙제는 R&D와 해외 진출로 요약된다"면서 "급변하는 환경에서 허 신임 대표가 어떻게 리더십을 보여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국내 제약업계는 이미 2세 경영 시대로 전환했다.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함께 성장해 온 제약업계는 선대 창업주가 물러나면서 2세, 3세들이 경영권을 물려받은 것이다. 광동제약의 최성원 사장이 대표적이다. 최 사장은 창업주인 부친 고 최수부 회장이 지난해 7월 타계한 후 대표이사직에 올랐다. 대웅제약도 창업주 윤영환 회장의 3남 윤재승 부회장이 이끌고 있다. JW중외제약의 경우 창업주인 이기석 회장의 손자이자 이종호 회장의 장남인 이경하 부회장이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약국에서 시작한 창업주들이 제약사로 성장하는 데 토대를 다졌다면 오너 2세들은 정체된 국내 제약시장에서 벗어나 해외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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