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사찰에서 사라진 도난 불교문화재 48점이 돌아왔다. 지정문화재인 충북 제천 정방사의 '목조관음보살좌상', 경북 청도 대비사의 '영산회상도' 등 보물급 문화재들이 다수 포함됐다. 조계종의 '불교문화재 도난백서'에 등록돼 있는 장물들로, 불화의 경우 절도범들이 절취 후 출처확인을 어렵게 하기 위해 제작자와 봉안장소 등이 기재된 화기(畵記)를 오려 내거나 덧칠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역대 최대 규모로 이번에 회수된 문화재들은 22일~23일 양일간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1층에서 공개된다. 지난 1988년부터 2004년 사이 전국 20개 사찰에서 도난된 이 문화재들은 지난 5월 말 그 일부가 서울의 한 경매장에 나오게 됐고 불법 매매 관련자들을 검거하면서 회수된 것들이다. 종류별로 불화 23점, 불상 1점, 나한상 6점, 복장유물 16점, 위패 2점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206호로 지정된 문화재인 제천 정방사의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지난 2004년 5월 도난을 당한 유물이다. 1689년 17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조각승 '단응'과 '탁밀'의 작품이다. 1988년 12월 잃어버린 청도 대비사의 '영산회상도'는 세로 370cm, 가로 320cm 크기의 대형 불화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8보살과 십대제자 등 많은 권속을 화면 가득히 표현한 전형적인 조선후기 불화 양식을 갖추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급의 불화로 평가되며, 이 그림을 그린 해웅(海雄), 의균(義均), 상명(尙明)은 청도 적천사 괘불과 동화사 아미타후불도를 조성한 이들로 경상도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화승들이다. 영산회상도란 '영취산(靈鷲山)에서 석가여래가 법화경을 설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을 의미한다. 공개된 작품 중 경매 출품됐던 청도 용천사의 '영산회상도'는 경매 시작가가 3억5000만원, 추정가 6∼7억원에 이를 정도로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사찰로 돌아올 수 있게 됐지만 심하게 훼손당한 문화재들도 많았다. 강원 삼척 영은사의 '영산회상도'는 도난 과정에서 화면의 상하를 칼로 오려내었고, 화면이 횡으로 꺾이거나 박락 현상이 심했고 경북 청송 대전사가 소장했던 '신중도'(부처의 정법(正法)을 수호하는 신들을 그린 불화)는 2000년 9월 사라진 후 14년 만에 제자리를 찾았지만 화기의 대부분이 인위적으로 훼손됐다. 전남 순천 선암사 불조전에 봉안된 '53불도' 역시 화폭에서 배경은 모두 없어지고 불좌상만 오려내진 다음 덧칠돼 문양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1702년 제작된 '53불도'는 원래 석가모니불과 과거불 총 53불을 6폭으로 나누어 그린 것으로 대승불교의 다불사상(多佛思想)을 표현한 불화다. 현재 남아있는 예가 없어 매우 귀한 예인데 화폭에서 절단된 불좌상 2점만이 돌아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외에도 1991년 1월 순천 송광사의 '지장시왕도'(지장보살과 심판관인 시왕을 그린 그림)를 비롯, 경남 진주 청곡사의 '도선국사진영', 전북 전주 서고사의 '나한상과 복장유물', 전남 해남 대흥사 '삼보위패' 등이 함께 공개됐다.
이번에 공개된 불교문화재의 불법 거래에는 총 13명이 관련돼 있었다. 지난해 1월 사망한 피의자 백 모씨 등 12명은 문화재 매매업자 등으로 지난 1989년 5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총 20회에 걸쳐 사립박물관 관장 권 모 씨(73세)에게 판매하거나 매매를 알선했고, 권씨는 도난 불교문화재를 총 4억4800만원에 매입 후 취득 일시부터 올해 6월 압수되기 전까지 개인 수장고 등에 은닉해왔다. 사설박물관을 운영하면서 불교문화재를 중점적으로 수집해 타인 명의 창고에 숨기면서 단속기관을 피해왔으나, 자신의 채무 문제로 일부가 경매 시장에 나오면서 적발이 된 것이다.
도난 불교문화재는 보물 제1043호 송광사 국사전 16조사진영 등 총 796점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번 48점을 포함해 현재까지 총 181점만이 회수됐을 뿐이다. 더구나 여전히 많은 불교문화재들이 불법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이번 공개전시와 함께 22일 오후 2시 대한불교조계종, 서울지방경찰청, 문화재청 3개 기관은 '불교문화재 도난 예방 및 회수를 위한 협약식'을 맺는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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