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드라이브에 기술평가 전문가 급구…변리사? 현장전문가? 자격기준 모호해 자의적 평가 우려도
[아시아경제 이장현 기자] 전통적인 보증서ㆍ담보 위주 대출관행에서 벗어나 기술력을 기반으로 대출을 해주는 이른바 '기술금융'이 금융권의 화두가 되면서 각 금융사가 기술평가 인력을 확충하는 등 관련 인력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다. 한편으론 기술금융 평가자의 자격 기준이 모호해 자의적인 평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각 은행과 기술신용평가사들은 기술금융 평가인력을 늘리고 외부 수혈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은행권에서 기술금융 인력 확충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곳은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이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7월 신설한 IB지원부 내 기술평가팀을 올 3월 기술금융부, 기술금융팀으로 변경한 뒤 올 7월에 다시 기술평가팀과 기술사업팀으로 확대 개편했다. 기술평가팀에는 전기ㆍ전자, 기계, 자동차, 금속, 화학 등 산업분야에서 10년 이상 현장경험이 있는 기술전문가 11명을 채용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전문인력 외에 외부 자문위원도 50여명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 은행은 현재 진행 중인 채용을 통해서도 기술분야 학위 소지자나 2년 이상 실무경험이 있는 자를 뽑을 예정이다.
일반 시중은행도 기술금융 인력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7월부터 팀장급 외부 전문가 1명과 이공계 전공 내부직원 3명을 충원해 총 10명의 산업기술평가팀을 구성했다. 우리은행도 지난 7일부터 기술금융센터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인재영입에 나섰다. 일단 올해 기술평가 전문인력을 외부에서 2명 수혈한 후 수요에 따라 추가 영입할 예정이다. KB국민은행은 지난 7일부터 지식ㆍ기술 전문가 채용에 나섰다. 지식분야는 R&D 경력 5년 이상, 소프트웨어 개발 경력 등이 지원자격이다. 기술분야는 해당 연구기관에서 5년 이상 연구하거나 기술평가 실무경력 3년 이상 등이면 지원 가능하다. 기술평가사인 기술보증기금, 한국기업데이터, 나이스신용평가 등은 기술평가 전문인력 수십 명을 운영하고 수시채용에도 적극적이다.
이렇게 금융권이 기술금융부서 몸집불리기에 나선 것은 금융당국이 기술금융 실적을 매달 보고받고 '기술금융 종합상황판'을 마련해 인센티브에 차등을 주겠다고 압박했기 때문이다. 당국이 드라이브를 걸자 은행의 기술금융 대출은 8월말 7221억원에서 9월말 1조8334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기술금융평가사의 자격에는 합의된 기준이 없어 자칫 비전문적이고 자의적인 평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융권에선 기술금융평가사의 자격으로 변리사, 기술 현장경험자가 주목받고 있지만 기술평가 관계자들도 이 기준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시중은행의 한 기술평가 관계자는 "어떤 사람이 기술평가 능력이 좋은 지 실상을 잘 모르겠다"며 "변리사 자격증, 현장 유경험자가 잘 할 것이라는 것은 단순한 기대"라고 말했다. 임형준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기술판단은 특허 출원 수 같이 개량적 평가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그 기술로 기업이 얼마나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기술금융 평가사 자격증 같은 것은 있을 수 없고 결국 각 금융사가 알아서 잘 육성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금융사가 출자한 금융연수원도 부랴부랴 기술금융전문가 양성에 나섰다. 금융연수원은 내년부터 금융사 여신ㆍ신탁ㆍ펀드ㆍ자산유동화ㆍIB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기술금융 과정을 개설한다. 그러나 강의 설계안대로라면 5일 동안 35시간의 집합교육에 그쳐 겉핥기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연수원 관계자는 "기술금융이 이제 막 시작돼 어렵지만 연수원은 최고의 전문가로 강의진을 확보했다"며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장현 기자 insi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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