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쓸 때 서양에선 비유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한국과 중국, 일본에선 비유 못잖게 흥(興)을 중요시해왔다. 이는 시의 개념에 대한 본질적인 견해 차이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비유는 소통을 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대상을 바로 표현하지 않고 중간에 어떤 다른 매개체를 넣어서 표현함으로써 생생함과 새로움을 얻는 방법이다. 사과같은 입술이라 할 때,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입술 뿐이다. 사과는 입술을 표현하기 위해 끌어쓴 생각의 도구일 뿐이다. 그러니까 비유는 타인을 위한 서비스에 가깝다. 시인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원관념을 더욱 잘 표현하기 위해 타인이 보다 잘 아는 보조관념을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옛 선조들이 쓴 흥은 타인에게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 속에 들어가기 위한 길놀이 혹은 예열(豫熱)같은 것이다. 세상의 사물들을 표현하면서 흥을 돋운다. 흥을 돋우기 위해 쓰인 것들이 시의 주제와 연결될 수도 있지만 아니어도 상관없다. 시인의 마음 속에 신명을 돋우는 것이면 된다. 비유는 언어를 중심으로 하는 시각적 장치라고 할 수 있지만, 흥은 청각적인 것을 포함한 마음의 전체적인 흥취이다. 흥을 일으키는 것을 기흥(起興)이라고 하는데, 주변의 사물을 읊조리는 동안, 내면에 감춰진 무엇이나 세상과 삶의 한 원리나 미감을 드러낼 수 있는 적절한 발열상태가 된다. 이 ‘마음이 상기된 상태’를 만들어내고 활용하는 시적인 방식이 동양적인 시의 골조를 이룬다.
서양의 시는 언어적이고 감각적(주로 회화적)이다. 동양의 시는 언어와 감각을 중요시하되, 심금(心琴)을 울리며 가락을 고조시켜가는 음악적인 내부를 가진다. 우린 시를 쓸 때 전통적인 자산인 기흥을 잃어버리지 않았나 싶다. 흥취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마음을 움직이게 하여 시경(詩境)으로 들어가는 신명나는 시읊기가 끊어지면서 시는 스스로를 부양하는 힘을 잃어버리고 기교에 의존한 의사소통으로 전락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