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만 보자면, 미국은 두 가지 단절을 겪고 있는 듯 하다. 하나는 오랜 콤플렉스로 역사가 잘린 풀잎처럼 짧다는 점이다. 미국의 철학과 미학과 과학과 문학과 수사학들은, 이 전통의 치명적 단구(短軀)를 위장하고 싶은 욕망에 다름 아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 나라가 한껏 유럽전통을 스스로의 문신으로 새겨넣어 만든 영화들은 결국에는 미국을 미화한 것이 아니라 유럽문화의 수월(秀越)을 입증할 뿐이었다. 미국의 독립역사의 위인들과 흑백의 갈등을 이겨낸 영웅들, 혹은 스포츠 히어로나 문제적 범죄자들의 스토리조차도 미국이 지닌 내면의 소박함을 고백하는 일을 추가하는 게 대부분이었다는 게 내 개인적인 인상이다. 심지어 아무리 멋진 성공학이나 아무리 위력있는 성취라 할지라도, 졸부국가가 가문을 포장한다는 인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적 애국심이, 단기간에 국가 정체성을 찾아낸 국민적 위대함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강조하지 않으면 허전해지는 내면의 반영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또 하나의 단절은 미래와의 단절감이다. 20세기에 벼락처럼 자라난 나라가 21세기에 이르러 동일한 국제적 위상을 반드시 기약할 수는 없는,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있다는 점 말이다. 군사적 도전, 경제적 도전에 바탕한 국제정치적 도전이 이미 슈퍼파워 미국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유연성의 시대, 다양성의 시대, 창발성의 시대, 문화의 시대, 아시아의 시대 따위의 키워드들은 지난 세기를 군림했던 한 나라를 불길한 기분으로 떠민다.
영화 ‘비긴 어게인’은 해묵은 신화가 없는 나라가 오늘에서 내일로 이어지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고뇌를 표현한 수많은 헐리웃 영화의 클리셰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존 카니 감독의 전작인 ‘원스’와 대비시켜 읽는 관점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데이빗 맥낼리 감독의 ‘코요테 어글리(2000)’가 생각났다.
두 작품을 함께 생각하는 것은 13년간 진행된 미국의 기분의 변화를 읽게 해준다. 인정받지 못한 가수의 성공기라는 점에서 두 영화는 같은 코드를 타지만, 10여년전의 작품은 ‘코요테 어글리’라는 공간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무대 공포증이 있는 주인공은 그 카페에서 빛을 발한다. 하지만 아버지를 비롯한 보통 시선에서는 그 ‘무대’가, 고급스럽지 않은 싸구려로 보인다. 이런 가치의 극복이 영화 속에 감동으로 녹아있다.
‘비긴 어게인’에서는 무대는 보조개념이다. 뛰어난 싱어와 뛰어난 음반프로듀서가 상봉하는 ‘우연’의 지점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음악은 음원이라는 개념으로 바뀌어 있다. 미국적 무대에 대한 애정은, 뉴욕 거리의 생생한 소음을 음악에 입히고자 하는 욕망으로 치환된다. 잘 삽입된 노래와 스토리의 진행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영화가 움직이는 공간 전체가 하나의 멋진 스튜디오처럼 느껴지게 한 것은 감독의 솜씨다. 댄과 그래타가 함께 이어폰을 끼고 듣는 음악을 관객이 공유하는 것 또한 그 거리 속을 함께 걸으라는 연출의 메시지다. 한편 음악적 성공의 주인공인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는 미국인이 아닌 영국인이다. 카랑카랑하고 당돌한 영국 여인을 미국적 예술성 속으로 들어앉게 하는 사람은 댄(마크 러팔로)이다.
영화 제목 ‘비긴 어게인’은 ‘다시 시작해, 노래가 당신의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Begin Again, Can a Song Save Your Life?)라는 긴 제목으로 되어 있다. 제목이 이미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제작자의 이런 태도는, 영화의 스토리로 승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영화를 보면서 그 노래들과 열정들로 당신을 힐링하라. 이 영화가 굳이 복잡한 복선을 만들려고 애쓰지 않고 또 극적 반전이나 심각한 비극을 깔지 않은 까닭은 여기에 있다. 영화에 들어와 한편의 음악같은 그 내면을 즐겨라. 이것이 존 카니의 제안이 아닐까 한다.
물론 약간의 장치들이 없는 건 아니다. 영화는 스타 음반프로듀서의 소외와 싱어송라이터인 그레타의 소외에서 출발한다. 댄은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조직적인 마인드가 없고 음악적인 고집이 지나친 바람에 창업 동지이자 동료에게서 버림을 받는다. 그 이전에 순식간에 바람난 아내와 이혼을 한 아픔도 있다. 가정적 실패와 사회적 실패라는 이중적 소외는 그를 극단의 선택으로 내몰기 직전에 있다. 그레타는 스타가수 데이브의 애인으로 영국에서 건너왔다가 데이브가 순식간에 바람나는 바람에 뉴욕에서 처절한 외톨이가 되어있는 상태이다. 그녀는 스스로의 재능에 대한 자부심은 있었으나 누군가의 검증이 없었기에 그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So you find yourself at the subway
그래 당신은 지하철에 있는 자신을 보네
with your world in a bag by your side
당신의 세상을 당신 옆에 있는 가방에 담았군
and all at once what seemed like a good way
얼핏 보면 멋진 길인 것처럼 보이지만
you realize is the end of the line
넌 알아 이게 막차라는 걸
For what its worth
그 의미야 어떻든
Here comes the train upon the track
선로를 따라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어
There goes the pain it cuts to black
고통은 어둠 속에서 사라지네
Are you ready for the last act to take a step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을 준비가 됐나
you can't take back
돌이킬 순 없어
그레타는 절망 속에서 ‘돌아킬 수 없는 한 걸음(a step you can't take back)’이란 이 자작곡을 부른다. 마침 지하철에서 죽을 생각을 잠깐 온 댄이 이 술집에서 노래를 듣는다. 저 노래 속에는 ‘뉴욕 지하철’이 지닌 양극의 두 가지 의미가 처절하게 살아숨쉰다.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은 선로에 뛰어드는 자살행위이지만, 인생의 모든 전진은 한 걸음을 죽을 듯이 내딛는 것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것이야 말로 ‘비긴 어게인’이다. 이것이 뉴욕의 신화이다.
상처에 결부된 둘의 절망이 하나의 공간에서, 한 여인의 입과 한 남자의 귀로 스파크를 일으킨다. 미국이 이 ‘벼랑 끝 절망’과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낙천성을 집요하게 그들의 신화로 삼은 것은, 과거와 미래가 없는 현재의 낙천성이야 말로 그들을 분발시키고 위무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두 사람의 성공은 예고된 것이겠지만, 그 성공과 함께 댄이 아내와 재결합하고 그레타가 애인의 마음을 되찾은 것은, ‘고통의 유발자’를 제거하거나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치유하여 되돌려 놓는 긍정적 에너지이다.
영화 속의 배우들은 자주 진정성이란 표현을 쓴다. 아마도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지금 미국 사회에서 진정성이란 것은 무엇인가. 대중을 만나고 그들을 깊이 감동시키기 위해선 진정성이 필요하고 믿지만, 왜 수많은 진정성들은 대중과는 따로 노는가? 댄과 그레타의 진정성은 왜 외면받았으며, 기어이 불꽃으로 타올랐는가. 댄을 몰아냈던 사람들과 그레타를 배척했던 사람들은 진정성과는 담을 쌓은 악인인가. 영화는 아무리 좋은 노래라도 그 진정성을 위한 포장은 필요하다고 일갈한다. 일단 들어야 진정성이든 뭐든 느낄 게 아닌가. 대중에게 도달하기 위한 가공과 포장을 무시하는 건 진정성이 아니라 무대책일 뿐이라고 말한다. 영화가 세상의 모든 소외를 극복하고 대화합을 이루는 건, 진정성 때문이 아니라 진정성을 성공시킨 끈기와 에너지 때문이라는 점을 놓쳐선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상심한 그레타와 절망의 댄이 그토록 정답게 데이트를 하면서도 왜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봤는지. 어쩌면 사랑이 이미 생겨나있는 시선을 보내면서도 그들은 그 선을 깨끗하게 지켰다. 나이 차이를 의식해서 그렇다고 말하는 건, 미국적이지는 않다. 자연스럽지도 않다. 두 사람의 러브라인으로 엮지 않는 힘은, 그들이 지닌 음악적 내면을 보다 개결하게 지켜나가려는 감독의 긴장이 아닐까 한다. 마음을 돌린 데이브가 그레타를 위해 부르는 마지막 노래는, 그레타가 데이브에게 헌정했던 노래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그레타는 데이브에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그를 떠난다. 노래는 이렇게 묻는다. 신이여. 청춘시절에 청춘은 왜 허비되는지 말해주오. 우린 단지 의미를 찾아 헤매는, 사냥철의 양들일 뿐이며, 빛나기를 그토록 바라는 숨은 별일 뿐이라고. 그녀는 그 노랫말의 울림을 들으며 가만히 떠난다. 평화로운 표정과 가벼운 발걸음을 한 채. 그녀가 만난 뉴욕은, 저 수많은 사랑의 별들이 숨어 반짝이며 소리치는 신화적 공간이리라. 서비스로, 아직도 귓전에 흐르는 ‘숨은 별들’을 흘려보낸다.
Please don‘t see just a boy caught up in dreams and fantasies
단지 꿈과 환상에 사로잡힌 한 소년이라고 보지 말아요
Please see me reaching out for someone I can see
내가 볼 수 있는 어떤 사람에게 끝까지 닿고싶은 나를 보아줘요
Take my hand, lets see where we wake up tomorrow
내 손을 잡아요, 내일 우리가 깨어날 곳이 어디인지 함께 봐요
Best laid plans, sometimes it‘s just a one night stand
가장 잘 짜여진 계획들, 때때로 우리가 하룻밤 즐기기 딱 좋은 그것이죠
I‘d be damned Cupids demanding back his arrow
내가 화살을 등 뒤에 진 망할 놈의 큐핏이 될 게요
So let‘s get drunk on our tears and
그러니 우리 우리의 눈물에 취해봐요, 그리고
God, tell us the reason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신이여, 청춘 시절에 청춘은 왜 허비되는지 말해주오
It's hunting season and the lambs are on the run searching for meaning
그건 사냥철이죠, 그리고 양들은 의미를 찾아 달리고 있는 거죠
But are we all lost stars, trying to light up the dark?
그러나 우리는 모두 어둠 속에서 빛나려고 애쓰는 숨은 별이 아닌가요?
Who are we? Just a speck of dust within the galaxy
우리가 누구죠? 다만 은하계에 떠도는 먼지 알갱이일 뿐인가요?
Woe is me if were not careful turns into reality
내가 주의깊게 실천해내지 못한다면 난 뭐죠?
Don‘t you dare let all these memories bring you sorrow
이 모든 추억들을 슬픔에 찬 당신에게 감히 가져오지 말아요
Yesterday I saw a lion kiss a deer
어제 나는 사슴에게 키스하는 사자를 봤어요
Turn the page maybe we‘ll find a brand new ending
페이지를 넘겨버리면 우린 아주 새로운 이야기 마무리를 발견할 거예요
Where were dancing in our tears and
그곳은 우리가 눈물 속에서 춤을 추고 있던 곳이었죠 그리고
God, give us the reason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신이여 청춘시절에 청춘은 왜 허비되는지 이유를 말해주세요
It's hunting season and the lambs are on the run searching for meaning
사냥철이고 양들은 의미를 찾아 뛰어다니고 있죠
But are we all lost stars, trying to light up the dark?
그러나 우린 모두 어둠 속에서 빛나려고 애쓰는 숨은 별이죠?
I thought I saw you out there crying
난 생각했어요 거기서 당신이 울고있는 것을 보았다고
I thought I heard you call my name
난 생각했어요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고
I thought I heard you out there crying
난 생각했어요 거기서 당신이 울고 있는 것을 들었다고
Just the same
다 같은 말이죠
God, tell us the reason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Its hunting season and the lambs are on the run
Searching for meaning
But are we all lost stars, trying to light up the dark?
But are we all lost stars, trying to light up the dark?
‘비긴 어게인’의 주제곡 ‘숨은 별들’(아담 리바인(Adam Levine) 노래)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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