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11일 정부가 담배가격을 2000원 인상키로 결정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담뱃값 인상이 결국 서민부담만 늘리는 우회 증세라는 반발에 맞서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정부가 이날 경제장관회의에서 확정한 금연 종합대책은 담배가격 2000원 인상안이 핵심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일 '돌연' 담뱃값 인상 카드를 꺼내든지 열흘만에 발표된 것이다.
당정 조율 과정도 생략됐다. 정부는 이날 경제장관회의 직전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담배가격 인상안을 보고했다. 통상 담배가격과 같은 민감한 이슈는 당정협의는 물론 야당과의 조율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정부는 지난 열흘간 한 차례도 당정협의를 갖지 않았다.
게다가 담뱃값 인상안 보고도 발표 당일 당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에 직접 보고하는 형식을 취했다. 새누리당내에선 '인상폭이 너무 크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인상'에 대해선 공감대를 이뤘다고 문 장관은 전했다.
인상폭을 놓고 정부내 의견도 갈렸다. 복지부는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선 최소 2000원 이상(문형표 장관, 지난 2일 기자간담회)을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기획재정부는 1000~1500원 상당의 인상을 견지했다.
이날 오전까지 정부안은 1500원 인상이 유력했다. 하지만 최고위 보고 직전 복지부 안대로 2000원 인상안이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최고위 보고 직전 정부안이 한 차례 바뀐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가 담뱃값 2000원 인상안을 고수한 배경에는 국회 입법 과정에서 인상폭을 '협상카드'로 쓸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야당에선 '서민부담'을 내세워 소폭의 담뱃값 인상을 요구할 경우 큰 폭의 인상일수록 인하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담뱃값 인상시 여론의 반발은 필연적이기 때문에 금연효과 등을 고려해 대폭의 인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담뱃값 인상폭을 조사한 결과 '5000원 인상'이 가장 많았다.
◇증세 논란 가열 = 이번 담뱃값 인상이 증세 목적이라는 여론은 확산될 전망이다. 이날 발표된 금연정책에는 담배 한 갑당 594원을 개별소비세를 새롭게 걷어 국고를 보충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개별소비세는 담배출고가격의 77%를 세금으로 매기는 방식으로 향후 담배가격이 올라가면 세액도 증가하도록 했다.
이처럼 새로운 세금이 생기면서 담배 한값에서 차지하는 세금 비율은 현재 62%에서 73.7%로 늘어났다.
다만 지방세 비중은 크게 줄어 향후 예산 편성 과정에서 중앙정부의 입김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담배 한 갑에서 차지하는 담배 소비세와 지방교육세 비중은 각각 25.6%와 12.8%에서 22.4%와 9.8%로 줄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세가 늘어나면 지자체가 지급받는 교부금도 늘어난다"면서 "국세로 과세하는 경우 약 40%는 지방으로 이전돼 지방재정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담배가격 인상폭에 따른 세수효과는 2000원 인상안이 훨씬 크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해 펴낸 '담뱃값 인상에 따른 재정영향 분석'을 보면 담뱃값을 4500원으로 2000원 인상할 경우 향후 5년간 23조6479억원의 세금을 더 걷는 효과가 발생한다. 담뱃값을 1500원 인상하면 5년간 18조1857억원의 세수 효과가 있다.
◇국회 처리는 가시밭길 =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내년 1월1일부터 담뱃값을 인상할 수 있도록 정기국회안에 처리돼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법안 처리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여야 모두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극한 대치상황인데다, 새정치민주연합 일각에선 이번 담배세 인상이 '우회 증세'라고 반발하고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향후 2년간 선거가 없다고 해도 지역구 의원들은 담뱃값 인상 이슈 자체가 부담스럽다"면서 "당정협의도 거치지 않고 법안만 제출하는 것은 야당과 또 싸우라는 것인데 정부가 담뱃값 인상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세수 부족이 시달리는 정부가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국회에 공을 떠넘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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