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도시농업의 가장 큰 수혜자는 우리 아이들이었습니다. 직접 아이들이 흙을 만져보고, 지렁이도 눈으로 확인하면서 건강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농업의 장점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신토불이' 채소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옥상에 텃밭을 일구면서 자연스레 냉방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1일 오후 서울시 신청사 8층 다목적 홀. 500여석에 달하는 관중석에는 빈 자리도 별로 없이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들이 가득 차 있었다. 강연장에는 자신의 '인생 2라운드'를 도시농업으로 채워보고자 하는 여러 중년 시민들이 '도시 농사꾼들'의 성공사례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서울시와 서울시인생이모작지원센터는 이날 '12인의 도시농사꾼 퍼레이드'를 개최하고 도시농업의 성공사례에 대한 발표와 경연대회를 열었다.
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서울의 '도시 농부'는 44만여명이다. 작은 텃밭을 일구는 것부터 시작해 자택의 옥상, 공동주택(아파트 등)의 옥상이나 베란다를 활용하고 있는 도시농사꾼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시는 이런 '베이비 부머' 세대에게 적절한 성공사례와 도시농사의 노하우 등을 전달하기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
이날 퍼레이드 강연에는 옥상텃밭이나 공동주택 텃밭 등을 성공적으로 일구고 있는 12명의 도시농사꾼들이 사례 발표에 나섰다. 이 자리에는 아파트 수박농장을 개척한 고창록씨(노원구), 15년째 도심 한 복판에서 채소를 길러온 주부 김무숙씨(송파구) 등이 함께했다.
강연자 중 특히 많은 참여자들의 관심을 끈 도시농부는 김무숙씨였다. 김씨는 평범한 주부지만 '도시농업의 원조'라고 불리며 15년째 자택 옥상에서 30여 가지의 농산물을 직접 길러내고 있다. 그는 텃밭에서 길러낸 작물로 고추장을 직접 만드는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김씨는 "최신식 구청이 눈 앞에 보이는 잠실에서 서른 다섯 평 정도 되는 작은 텃밭을 일구고 있다"며 "텃밭에 오는 새와 나비 같은 동물들과 어울리며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도시농업의 매력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도시농업은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고, 하다 보면 옆에서 도와주는 분들도 있고 노하우도 생긴다"며 "좋은 땅에 좋은 씨를 뿌리고 애정을 주면 꼭 땅은 주인에게 화답하게 된다"며 '새내기 도시농사꾼'들을 격려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비율이 높은 서울인 만큼, 공동주택에서 도시농업을 일구는 방법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발표에 나선 고창록씨는 1200세대 규모의 대형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연간 200여개의 수박을 생산하는 도시농사꾼이다. 앞선 김무숙씨와 달리 고씨는 도시농업의 어려움과 기술적 측면에 대해 얘기했다. 고씨는 "공동주택인 아파트 옥상에서 수박농사를 짓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공동주택 옥상은 농사를 짓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창의력과 함께 통찰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어려웠던 점은 장기간 가뭄에서 버틸 수 있는 보습성과 비가 많이 내릴 때 견딜 수 있는 배수성을 옥상 텃밭에 확보하는 것이었다"며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텃밭을 일굴 때 주변에서 '텃밭의 무게 때문에 건물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했다"고 털어놨다. 고씨는 보습성과 배수성이 모두 좋은 흙을 개발하고, 빗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할 수 있게 저수조를 마련하는 등 도시농업에도 피땀 어리고 치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강연을 들은 서울시민 박춘란(65ㆍ여)씨는 "시골에서 예전에 농사를 짓던 가락이 있어 지난 13년간 고무통 몇 개를 놓고 방울토마토, 고추 등을 조금씩 길러왔다"며 "발표하신 분들을 보니 저렇게 공터를 잘 활용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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