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령을 앞에 하고, 비로소 미시령을 공부한다. 어찌 하여 이름이 미시령인가. 미시(彌矢)라고 쓴다. 미륵의 화살? 마침 미륵 미(彌) 글자에 활이 들어있으니 활과 화살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워낙 높아서 사람이 넘지 못하고 화살만 멀리 쏘아 넘기는 그런 고개란 뜻이었던가. 예전엔 미시파(彌時坡)령이라 불렀다고 한다.(동국여지승람) 오르는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고개라는 의미이다. 연수령(延壽嶺, 택리지)이라고도 불렀다. 목숨이 길어지는 고개라는 뜻인데, 산악신앙의 일면이 보이는 듯도 하고,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한다는 의미를 달리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연슈파, 큰령이라고도 불렀다. 이 고개를 넘느라 분투한 인간의 땀과 시간이 지명 속에 녹아 있다.
아닌게 아니라, 이 고갯길은 여러 번 폐쇄와 개통을 거듭했다. 고려 때 길이 났으나 워낙 험해서 거의 사라진 것을, 1493년 성종 때 다시 도로를 뚫었다. 조선말에 관리가 안되면서 다시 없어졌는데,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토 개발의 차원에서 다시 열렸다. 미시령의 아랫배가 깊숙이 뚫린 것은 2007년 5월이었다. 인제군 북면과 속초시 노학동을 잇는 미시령터널(3.69km)이 생긴 것이다. 서울에서 두시간 남짓으로 달려올 수 있는 이동거리의 혁명이었다. 태백산맥의 큰 형님이라 할 만한 이 산을 함부로 개복(開腹)한 괘씸함이야 이루 말해 무삼하리오마는, 그렇게 자연을 부숴놓은 덕에 빈섬이 이렇게 고즈넉한 휴가를 누릴 수 있으니, 그리 투덜댈 일만은 아니게 됐다.
미시령은 설악산 북쪽에 해당하는 산악으로 서쪽에는 백담사와 십이옥녀탕, 도적못(盜賊沼)이 있고, 영을 넘어 동쪽으로 오면 선인재, 신선바위, 혜바위, 화암사, 울산바위를 솟아올리면서 외설악으로 치닫는다. 지금은 어둑한 구름하늘 아래로 운무가 층층의 겹산 사이로 흘러다니고 있다. 산신이 살아야 명산이라는 그 화두가 이 아침 내 눈앞의 장쾌한 풍광으로 펼쳐져 있으니 실로 안복(眼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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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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