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풀이 위주로 수학을 배웠지만 몇몇 뛰어난 수학자들의 이름을 알게 됐다. 자신의 이름으로 정리를 남긴 피타고라스, 기하학의 기초를 닦은 유클리드, 미적분을 개척한 뉴턴과 라이프니츠, 만능 수학자 가우스, 수학의 성인 오일러 등이 그들이다.
인물의 명성은 대개 업적에 비례한다. 인물을 중심으로 한 세계 수학사에 한국 학자의 이름은 없다. 수학의 발전에 우리는 기여한 바가 없다.
이렇게 알고 있는 내게 허성도 서울대 중어중문학 명예교수의 주장은 뜻밖이었다. 인터넷으로 절찬리에 읽힌 한 강연에서 허 교수는 조선시대 18세기 수학책에서 예를 들며 "이만하면 조선시대 수학책 괜찮지 않습니까"라고 묻는다. 그가 높이 평가한 조선시대 수학은 이런 것이다.
'구체(球體)의 체적이 6만2208척이다. 이 구체의 지름을 구하라.'
'sin 25.4251도의 값은 0.4338883739118이다.'
동의하기 어려운 얘기다. 구(球)의 체적과 지름의 관계나 삼각함수의 값을 18세기에 활용하고 계산한 것은 '수학적으로' 평가할 대상이 아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지적 도약으로 꼽히는 미적분, 정수론과 그 꽃인 소수(素數) 이론, 다차(多次) 방정식의 일반해, 정규분포와 확률 등 수학 분야의 발전에 비추어 조선시대 수학은 논의할 거리가 없다.
부분에 수긍하지 못한 나는 그의 큰 주장에도 의문을 갖게 됐다. 허 교수는 "세계사에서 500년 동안 간 왕조는 하나도 없었다"면서 "유례없는 장기 통치가 가능했던 것은 최소한의 정치적인 합리성, 최소한의 경제적인 합리성, 조세적인 합리성, 법적인 합리성, 문화의 합리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구체적인 논거로 기록하는 정신, 상소제도, 3심 재판제도 등을 든다.
과연 그러한가. 왕국을 평가하는 기준이 왕실이 얼마나 오래 존속했는가인가? 그렇다면 조선보다 고구려ㆍ백제가, 고구려ㆍ백제보다 신라가 더 훌륭한 나라였다는 말인가? 또 오래 존재하는 체제에는 긍정적인 무언가가 있을까? 일본 도쿠가와(德川)막부 역시 여러 측면의 합리성 덕분에 일본 사상 최장기에 걸쳐 존속한 것인가? 왕실 존속 기간보다는 일반 백성이 얼마나 잘 살았는지를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하지 않나?
없었던 것을 있었다고 말하고 일리가 없는 논리를 내세우는 일은 군색하다. 우리에게는 세종과 이순신이 있고 문화와 멋이 있다. 자랑스러운 역사를 제대로 자랑하자.
백우진 국제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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