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김신욱(26·울산)의 주가가 껑충 뛰고 있다. 알제리를 이기기 위한 필승카드로 꼽힌다.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조커의 위상을 높인 이근호(29·상주)처럼 한 방을 책임질 해결사로 기대를 모은다. 그러나 본인의 생각은 다르다. 그의 목표는 희생하는 공격수다.
김신욱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이유는 알제리의 불안한 수비 때문이다. 특히 제공권 싸움에서 허점을 드러냈다. 18일(한국시간) 벨기에와의 1차전에서 해답이 나왔다. 선제골을 넣고 앞서 가던 알제리는 후반 20분 벨기에의 장신 공격수 마루앙 펠라이니(27·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교체 투입된 뒤 급격히 흔들렸다. 키가 194㎝인 펠라이니는 들어간 지 5분 만에 헤딩슛으로 동점골을 넣었다. 높이를 앞세운 공격수가 벌칙구역 안에서 주도권을 빼앗자 체력이 떨어진 알제리 수비진은 우왕좌왕하다 후반 35분 역전골까지 허용했다.
알제리가 내세운 포백(4-back)은 전체적으로 높이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중앙 수비수 마지드 부게라(32·레크위야)가 190㎝로 가장 크다. 오른쪽 측면 수비수 메흐디 모스테파(31·아작시오·181cm)를 비롯해 중앙 수비수 라피크 할리체(28·아카데미카 코임브라·187cm), 왼쪽 측면 수비수 파우치 굴람(23·나폴리·186cm) 모두 펠라이니에 미치지 못한다. 순발력도 뛰어나지 않다. 대표팀 내 최장신인 김신욱은 196㎝로 펠라이니보다 2㎝가 크고 유연성까지 갖췄다.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 수 있는 적임자로 꼽히는 이유다.
반면 김신욱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공격수의 모습은 대표팀에서 원톱 경쟁을 하고 있는 박주영(29·아스날)이다. 득점도 중요하지만 동료에게 기회를 내주는 이타적인 플레이에 초점을 맞춘다. 러시아와의 1차전에서 기대했던 승점을 획득한 데는 박주영의 역할이 컸다고 믿는다. 그는 "상대 수비수의 목표는 원톱 수비수를 묶는 것이다. 박주영이 전반전에 상대 수비수를 많이 움직이게 하면서 체력을 소진시켜 이근호가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했다.
홍명보 감독(45)이 추구하는 전술에서도 최전방 스트라이커에게 부여한 임무가 드러난다. 박주영은 지난달 28일 튀니지(0-1 패), 10일 가나와의 평가전(0-4 패)에서 각각 슈팅 한 개만 기록했다. 러시아를 상대로는 아예 슈팅을 시도하지 못하고 후반 10분 만에 교체됐다. 공격수의 주 임무인 골이 없다는 점에서 혹평이 쏟아졌으나 정작 홍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공격수는 득점 외에도 해야 할 역할이 많다. 우리 팀의 플레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수들이 각자 맡은 임무를 충분히 알고 있다"며 신뢰를 보냈다.
멀티 능력이 있는 2선 공격진을 활용해 득점을 노리는 전술이 핵심이다. 대표팀은 미국 마이애미 전지훈련을 거치면서 측면 공격에 무게를 두고 상대를 공략하는 방법을 연마했다. 손흥민(22·레버쿠젠)과 이청용(26·볼턴)의 좌우 날개를 비롯해 섀도 스트라이커 구자철(25·마인츠)이 주로 득점을 노렸다.
김신욱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런던올림픽을 지켜보고 대표팀 훈련을 경험해보니 공격할 때는 주로 섀도 스트라이커나 측면 공격수 쪽에서 기회가 많이 생긴다"며 "박주영의 역할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장점인 제공권과 포스트 플레이는 물론 발을 활용한 연계 플레이에도 집중해 왔다. 중앙선까지 활동 반경을 넓혀 동료들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는 능력이 뛰어나다. 지난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도 열아홉 골을 넣으며 도움 여섯 개를 기록했다. 알제리의 수비진이 부담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주 임무인 헤딩과 슈팅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김신욱은 "조커의 역할은 경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것"이라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득점이든 연계 플레이든 반드시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