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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시대, 남자가 사는법(20)] 그땐 왜 그렇게 아버지가 밉고 답답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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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감내한 굴욕의 시간들, 그게 가족을 지켜냈구나

[아시아경제 최창환 대기자]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그 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니까, 아버지 처지가 되니까 아버지가 새삼 생각난다. 나보다 주먹 하나는 더 큰 아들내미가 나를 무시하고 엉길 때, 그 때가 생각난다. 내 얘기가 아니라 친구들 얘기다.

 언론계 선후배 셋이 만났다. 비슷한 무렵에 기자생활을 시작해 다른 곳에서 일한다. 함께 젊은 시절을 보냈다. 대화가 통한다. 나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위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남들은 가졌는데 없는 것에 대한 '상실감'과 '궁금증'이 있을 뿐이다.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는지 물어봤다. 돌아온 답이 '미안하고', '고마운' 사람이다. 두 분 모두 돌아가셨다.


 그 때 왜 그리 아버지는 왜소하고 답답했을까. A에게 아버지는 '비굴한 속물'이었다. 1980년대 초반, 전두환 정권 초기였다. "데모(시위)하지 말아라.". "어쩔수 없이 해야하면 뒷자리에 서라." 아버지의 말씀은 A를 울컥하게 했다. 군부독재도 나쁘지만 비겁한 어른들도 문제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관심은 시위현장에서 아들을 격리시키는 데 집중됐다. 아버지의 다른 관심은 온통 '돈' 얘기였다. 나는 당시 외삼촌집에서 함께 살았다. 외삼촌도 나에게 똑같은 말을 했었다. 우리 또래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그렇게 살았다.

 "삶은 얼마 간의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황지우의 길)을 그 때는 할 수 없었다. 젊은이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가족을 온전히 지켜내고 부양하는 일이 얼마나 버겁고 힘든 일인 지 그때는 몰랐다. 인류번영과 민주주의는 내 손에 있어도 가족은 관심 밖에 있었다. 수많은 아버지들이 한 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굴욕'을 감내하는 지, 아니 자처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아침에 A는 거울을 본다. 흰 머리와 눈 아래 잔주름에서 아버지를 발견한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이제 생각하니, 아버지는 가족의 '영웅'이었다. 나는 자식 둘 키우기도 버거워 한다. 중소기업을 다니던 아버지는 삼형제를 모두 대학을 보냈다. B는 화분을 보살피는 취미가 생겼다. 화분에 물을 주는 아버지를 보면서 '남자가 그렇게 할 일이 없나'라고 생각했었다.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자신을 발견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내고 스러져 갔다. 돈 많고 힘 있는, 당당하고 자랑스런 친구의 아버지가 부러웠다. 뒤늦게 깨닫는다. 힘 없는 아버지들이 가정을 위해 굴욕을 감내하며 쌓아온 땀방울이 나를 키우고 가정을 지키고 나라를 이만큼 만들었음을. 내가 아버지를 무시하며, 아버지에게 쏟아 부은 한 바가지의 굴욕. 부끄러워 진다. 안그래도 힘드셨을 텐데.


 B는 아이에게서 젊은 날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뭔 말을 해도 "알아서 할게요"라며 퉁퉁거리는 아들의 모습은 30년전 자신의 모습과 닮은 듯 다르다. 돈 못 번다고 대놓고 괄시하는 아내의 모습이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지 애미 따라하는 것 같아." "속으로 끓지만 어쩔 방법이 없어." "아버지도 묵묵히 참아내셨다는 생각이 들어." 화초를 가꾸며 화를 삭인다. 아버지가 꽃을 가꾸면서 능력 없는 가장에 대한 가족들의 야유를 속으로 녹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삶은, 생은 기억이다. 거울 속에 비친 중년의 내 안에 있는 아버지의 모습. "왜요"하고 대들면서 아빠를 귀찮아 하는 아들의 눈망을 속에 있는 젊은날의 나의 초상. 기억을 통해 아버지가 살아나고 철없는 내 모습이 되살아난다. 유전자는 수십억년 동안을 기억을 재생하며 생명을 이어왔다. 기억은 진화를 통해 생태계를 만들었다. 아버지로부터 나로, 나에게서 아들로 이어지는 세대 간의 기억은 갈등과 반항과 이해를 거쳐 연민으로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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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 살아있소 그대 살아있소 아- 있소 아- 있소 내 맘속에' '그대 사랑 있소 그대 사랑 있소 아직도 아직도 내 맘속에' 한대수의 노래 '그대'다.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 속에 살아 있다. 아들이 내 젊은 날의 모습을 되살릴 때면 그때 아버지의 모습이 가슴을 적신다. 아빠가 뒤늦게 미안해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괜찮아"라고 손을 잡아주는 듯 하다. 아버지가 아니라 "아빠"라고 다시 부르고 싶은 마음이다.


 A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지고 크게 웃는다. 그의 얼굴에서 그런 웃음을 본 적이 없다. 기숙학원에서 재수하는 아들에게 절 받은 경험담을 늘어놓는다. 집에 들른 아들이 방으로 들어오더니 "아빠 고맙습니다"하고 큰 절을 하더란다. "왜 그래" 물었더니 씩 웃기에 "너 용돈 필요하구나"라면서 돈을 집어줬다고 자랑한다. "애엄마가 시킨 거겠지"라며 아내에게 고마워 한다. 몇 년간 아내와 아들과 쌓아온 갈등이 한 번에 녹아내린다. 나이가 먹었는데도 철안든 어린애 같다.
 




세종=최창환 대기자 choiasi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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