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나온 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이지만 어느 샌가 그 물에서는 일상어처럼 쓴다는 그 말, 기아바이. 언뜻 들으면 네다바이를 떠오르게 한다. 네다바이는 일본말인데, 작은 것으로 믿게 한 뒤 큰 것으로 사기를 치는 범죄행각을 가리킨다.
하지만 기아바이는 그런 범죄나 범죄자는 아니다. 그냥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행상을 가리킨다. 오래 전 이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졸지에 실명이 왔거나, 혹은 큰 부도를 맞아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사정을 호소한 뒤에 물건을 팔던, 그 익숙한 레파토리를 생각하면, 기아바이는 그 인생 막장에 다다른 기아(饑餓)를 호소한 뒤 바이(buy)를 애걸하는데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도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 기아바이에 대한 어떤 글을 읽다보니, 통념과는 달리 그들이 파는 물건들 중에 품질이 괜찮은 것도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지하철 당국은 이런 행상들의 뒤에는 나쁜 사람들이 얽혀있는 경우가 많으며 물건들을 안 사주는 것이 이들을 '근절'하는 길이라고 일러주고 있지만, 승객들은 빈약한 제 주머니돈으로도 고민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싸구려 물품들을 속는 셈 치고 사들인다.
기아바이라는 말을 만난 것은, 홍신선 시인의 시 '마음경 59'에서이다.
군포에서 의왕구간 전철 안에서
소리 짓밟히는 기아바이 행상꾼 녹음기 릴 테이프에서
그가 덜컥덜컥 튀어나온다
반쯤 돌린 초췌한 그의 옆얼굴
삶치고 허랑한 행상꾼 아닌 자들 있으랴
고3시절 진학 포기하고 밴드부에 혼자 남아
중고짜리 트럼펫만 자랑스럽게 불던
지방 방송국 경음악단 한 구석을
늙어서도 끝끝내 지키며
떠돌았던
그
내 마음 시골학교
얕으막한 담장 밖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증기 배출하는 압력밥솥처럼 몸피 큰 나무 속에 오래 들끓던
덜 퍼진 밥알만한 수천수만 꽃알들
확확 터져 나왔는가 몰라
합주들 쿵쾅대며 실습하고 있는가 몰라
싸구려 테이프나 시디를 파는 기아바이를 바라보며 저 시인은 고3시절의 한 친구를 떠올렸다. 그것이 마음이다. 마음은 그 안에 시골학교를 그대로 두고 담장 밖에 여전히 밥알만한 이팝꽃을 떠뜨리고 있는 것이다. 기아바이에서 저 시골학교로 가는데는 1초도 안걸리는 광속의 이동이다. 대체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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