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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경선 칼럼]내가 죽고 네가 살아야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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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경선 칼럼]내가 죽고 네가 살아야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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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는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어느 하나 사연 없는 죽음이 없고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죽음이 없다. 그런 중에도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참말로 애처로운 죽음이 있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참척(慘慽)'이다. 열일곱, 열여덟 살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죽음이다. '부모 주검은 땅에 묻고 자식 주검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부모 죽음보다, 살아서 자식의 죽음을 보는 것만큼 참혹한 슬픔은 없다고 한다.


오죽하면 '상명지통(喪明之痛)'이란 말이 생겼을까. '상명지척(喪明之戚)'이라고도 하는 이 말은 눈이 멀 정도로 슬프다는 뜻이다. 아들이 죽은 슬픔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아들이 죽자 상심한 나머지 밤낮을 울다가 마침내 눈이 멀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소설가 박완서씨가 잠시나마 '하나님은 없는 게 낫다'고 절규한 것도 참척에서 비롯된 일이다. 그는 1988년 생전에 스물여섯 살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산문집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내 수만 수억의 기억의 가닥 중 아들을 기억하는 가닥을 찾아내어 끊어버리는 수술이 가능하다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련만…"이라고 탄식했다. 그러고는 "하느님이란 그럴 수도 있는 분인가. 사랑 그 자체라는 하느님이 그것밖에 안 되는 분이라니. 차라리 없는 게 낫다" 고 원망했다. 자식을 앞세운 고통과 분노가 얼마나 컸기에 그랬을까 싶다.


단 12척의 배로 백척간두에 놓였던 나라를 구한 성웅(聖雄)도 자식의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한낱 아비였다. 안편도, 지금의 전남 신안군 장산도에 머물던 장군 이순신은 충남 아산 본가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스무 살의 셋째 아들 면이 전사했다는 소식이었다. 장군은 하늘을 원망하며 아들의 죽음에 통곡했다. 1597년 10월14일, 그날의 일기는 한마디 한마디가 절절했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너그럽지 못하단 말인가? 아들아,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마땅한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렇게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 어디 있느냐? 천지가 캄캄하고 태양조차 빛을 잃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날 버리고 어딜 갔느냐?…하룻밤 지내기가 1년 같구나."


여느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아물지만 자식을 잃은 고통은 쉬 치유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자식을 앞세웠을까', 부모를 자책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충무공은 "자식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부모는 죄인이라고 하지 않던가. 자식이 죽고 부모가 살았으니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 일인가"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박완서씨도 "그 애 없는 세상의 무의미함도 견디기 어렵거니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벌을 받나 하는 회답 없는 죄의식과 부끄러움은 더욱 참혹하다….'고 했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오늘로 엿새째. 살아 돌아온 학생들은 325명 가운데 75명. 나머지 250명의 학생들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거나 아직도 어둡고 차가운 물속을 헤매고 있다. 진도 팽목항과 실내체육관에서 실종된 자식들을 한없이 기다리는 부모들의 심정이 오죽할까. 우울과 불안, 통곡, 오열, 탈진, 실신, 분노…. 마음도 몸도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는 그들의 충격을 그 어떤 말로 대신할 수 있겠는가.


자식을 잃은 부모들, 그리고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아니 놓을 수 없는 부모들. 자식을 먼저 보내고 살아남았음을 자책하는 부모들의 눈물을 위로할 수 있을까. '참척을 당한 어미에게 하는 조의는 아무리 조심스럽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위로일지라도 모진 고문이고, 견디기 어려운 수모(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라던데….






어경선 논설위원 euh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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