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시(詩) '태안반도에서 들었다'는 반전이 묘미다. 시작은 유유자적하다. '소라 구멍에 귀를 가져다 대면 소라가 전하는 바다의 말.' 다음 문장은 예상을 빗나간다. '야이이이이이이이개쌔끼들아아아아아아아아아…'
처음에는 '얼마나 맺힌 게 많으면 바다가 저럴까' 싶다가, '아니지, 시인의 마음이 어수선하니 소라 소리가 욕으로 들리는 게지' 했다가, 문득 욕을 입에 달고 사는 동료 누구누구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급기야 연일 설전(舌戰)을 주고받는 우리의 거칠어진 '입'에 눈길이 종착한다. 정당이든 기업이든 조직을 대변하는 '입'은 자신들의 정신과 생각을 설파하는 핵심 인력이다. 그런 입이 남(다른 정당이나 경쟁 기업)을 언급한다면, 십중팔구 험담이고 비난이며 욕이다.
입씨름으로 밤을 새우는 정치판이야 새삼스럽지 않다. 남이 하면 불륜, 자신이 하면 로맨스라고 억지를 부리는 그 '입'이 보기 민망할 뿐이다.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업의 입'도 거칠어졌다. A사가 B사를 비방하면 B사가 반격하고, C사가 A사와 B사를 싸잡아 비난하고, A사와 B사는 다시 C사를 험담하고. 동료 의식은 사라진지 오래다. 철천지 원수도 아니건만 적개심이 하늘을 찌른다.
미국 작가 제럴드 가드너는 입씨름에서 승리하는 비결로 '위트'를 꼽았다. 밥돌 전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펴낸 '대통령의 위트'도 설전의 힘은 비난과 음해가 아닌 위트와 유머임을 역설한다. 그러면서 위트가 넘치는 역대 미국 대통령 순위를 매겼는데 결과는 이렇다.
3위 프랭클린 루스벨트 - 그의 위트는 대공황과 세계 대전을 견뎌내는 데 도움이 됐다. 2위 로널드 레이건 - 배우로서 결코 타이밍이 어긋나는 법이 없었다. 1위 에이브러햄 링컨 - 가장 위대하고 재미 있었던 대통령이다.
링컨의 위트를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사례. 상원 위원 후보자리를 두고 대결할 때 스티븐 더글러스 의원이 링컨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당신은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요." 링컨이 웃으며 받아쳤다. "만약 내게 두 개의 얼굴이 있다면 하필 오늘 같이 중요한 자리에 이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소."
'소라가 전하는 바다의 말'이 거칠지만 불쾌하지 않은 것은 시인의 상상력이 낳은 위트 때문이다. 싸워야 할 때는 싸워야겠지만, 위트가 빠진 입씨름은 이전투구(泥田鬪狗)다. 유머와 여유가 넘칠수록 '입'의 품격은 높아진다. 그것이 결국 이기는 길이다. <후소(後笑)>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