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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기] 커피 대신 긴장감? 검찰 ‘티타임’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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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오늘은 할 것도 없는 날인데….”


3월10일 오후 2시30분 서울 대검찰청 12층 회의실. 서울시 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총괄 지휘하는 윤갑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수십 명의 기자는 윤갑근 수사팀장 침 삼키는 소리까지 담고자 노트북 자판을 두드렸다. “오늘은 할 것도 없는 날”이라는 얘기는 기삿거리가 될 만한 내용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팀장의 이런 얘기를 있는 그대로 듣는 기자는 ‘초짜’임을 인증하는 모습이다. 할 얘기가 없다고 말할 때 거꾸로 ‘굵직한 뉴스’가 숨어 있다는 것을 파악해야 한다는 얘기다.

검찰 고위 관계자와 기자들은 수시로 ‘티타임’을 가진다. 차를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는 것을 상상하겠지만, 대부분의 티타임에는 커피나 차가 없다. 수십 명의 기자를 위해 차를 준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적은 인원의 기자들이 인사차 검찰 간부의 방을 찾는 경우 진짜 차를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출입기자들에게 시간과 장소가 정식으로 공지되는 검찰 ‘티타임’은 그런 편안한 자리가 아니다.


기자들은 커피 대신 팽팽한 긴장감을 마신다. 검찰 고위 관계자 농담 속에 특종이 숨어있을지 모른다. 한마디라도 그냥 흘려들어서는 안 되고, 얘기의 조각을 엮어가야 뉴스로서의 그림이 완성된다. 아무 생각 없이 말하는 얘기를 받아 적기만 하면 ‘진짜 뉴스’를 놓칠 수도 있다.


[취재후기] 커피 대신 긴장감? 검찰 ‘티타임’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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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고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정보 제공에 인색하다. 아니 인색할 수밖에 없다. 피의사실 공표 문제가 걸려 있기에 중계 방송하듯이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나 기자 수십 명이 괜히 모여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검찰 고위 관계자도 잘 알고 있다. 하나 마나 한 농담이나 주고받는 자리가 아니라는 얘기다. 기자들은 긴장 가득한 눈빛으로 검찰 고위 관계자 얘기에 주목해야 한다.


웬만하면 팩트를 있는 그대로 발표하지는 않는다. 알듯 모를 듯 선문답처럼 들리는 얘기에 담긴 ‘뉴스의 원천’을 찾아내는 일, 그것이 바로 검찰 기자들의 숙명이다.


그렇다면 3월10일 검찰 수사팀장 티타임에서는 언제가 긴장감이 극대화되는 ‘극적인 순간’이었을까.


윤갑근 수사팀장은 “매일 진수성찬은 못하고 가끔 분식도 먹고 하는 것 아니겠나”고 말했다. 오늘은 굵직한 기사 내용이 없다는 얘기다. 진수성찬은 굵직한 기사, 분식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기사를 의미한다.


만약 기자가 검찰 고위 관계자의 이런 얘기를 듣고 “오늘은 별 게 없구나”라고 판단했다면 굵직한 뉴스를 놓칠 수밖에 없다. 그런 얘기 뒤에는 진짜 ‘뉴스의 원천’이 숨겨져 있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밀어내도 되지 않나.”


검찰 수사팀장은 알듯 모를 듯 한마디 툭 던졌다. 바로 여기가 긴장감이 극대화되는 지점이었다. 그냥 한마디 툭 던졌을 뿐이지만, 검찰 수사의 방향을 암시하는 내용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밀어내도 되지 않나”는 무슨 얘기일까.


신문사는 여러 버전의 지면을 제작한다. 지방으로 내려 보내는 신문은 마감이 빠르다. 서울 중심부에 배달하는 신문은 최신 속보를 전한다. 일부 신문은 자정을 넘겨 새벽 상황까지 지면에 담기도 한다.


신문사는 뒤늦게 ‘중요뉴스’가 발생하면 전에 있던 기사를 ‘밀어내고’ 새로운 기사를 지면에 배치한다. 검찰 수사팀장이 한마디 툭 던진 “밀어내도 되지 않나”라는 얘기는 그러한 신문 제작시스템을 빗댄 발언이다. 뭔가 큰 사건이 터질 것임을 예고하는 발언이라는 얘기다.


사실이었다. 큰 건이 터졌다. 검찰 수사팀장이 알듯 모를 듯 한마디를 던지고 2시간이 지난 후 검찰 기자들은 속보 기사를 전하기 바빴다. 검찰 수사팀장 발언에 담긴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언론이 경쟁적으로 쏟아낸 뉴스 속보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


“검찰, 오후 5시부터 내곡동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 착수.”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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