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백종민 기자]지난해 미국 의회 국토안보위원회(위원장 톰 카퍼)에서 개최한 사상 첫 '비트코인' 청문회는 생소한 가상화폐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을 널리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청문회에서 벤 버냉키 당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비트코인이 희망적"이라고 언급했다. 그의 의견이 알려지면서 새로운 화폐의 미래가 탄탄대로라는 기대감이 팽배해졌다.
비트코인에 대한 규제가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그러나 각국 정부의 규제는 오히려 비트코인을 음지에서 양지로 옮기는 다리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토안보위원회는 비트코인 규제와 관련해 미 의회 법률도서관에 조사를 의뢰했다. 이는 비트코인에 대한 세계 40개국의 입장 및 실제 사용 여부와 관련된 것으로 각국의 비트코인 규제 현황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창이다.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국가 가운데 중국과 브라질만 비트코인 사용을 규제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비트코인을 규제하지 않는다.
물론 비트코인에서 비롯된 자본이득에 과세하는 나라는 있다. 독일ㆍ핀란드ㆍ싱가포르ㆍ캐나다는 이미 비트코인에 대한 과세 기준을 제시했다. 핀란드 당국은 비트코인으로 얻은 이익에 대해 적극적으로 과세한다. 비트코인 매매로 시세차익이 생기거나 비트코인으로 산 물품의 가치가 상승할 경우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다.
아일랜드ㆍ이스라엘ㆍ슬로베니아ㆍ호주는 과세 방침을 마련 중이다.
최근 통화가치가 급락한 신흥국들 사이에서도 비트코인이 점차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규제 대상으로 인식되진 않고 있다. 이번 신흥국 위기의 출발점인 아르헨티나에서 비트코인 사용이 점증하고 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당국의 입장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터키 당국은 비트코인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터키 국민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스탄불국제공항에 비트코인 자동입출금기(ATM)가 등장했다. 캐나다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터키에 도착하자마자 달러를 가치변동이 심한 현지 리라화 대신 비트코인으로 바꿔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구제금융 신청 과정에서 거액 예금자의 예금이 동결돼 비트코인 가치를 급등시킨 곳이 키프로스다. 키프로스에서도 비트코인에 대한 규제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비트코인으로 등록금을 받겠다는 대학까지 나왔다.
브라질은 비트코인을 적극적으로 규제한다. 지난해 10월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를 규제할 수 있는 '전자화폐 규제 법안'이 브라질 의회에서 통과됐다.
중국에서는 중앙은행이 금융기관의 비트코인 거래 규제 의사를 밝히고 나서자 1200달러(약 129만원)까지 폭등했던 비트코인 가치가 자유낙하하고 말았다. 하지만 중국 당국도 개인 간 거래는 막지 못하고 있다. 대만 당국은 지난해 후반 금융기관의 비트코인 관련 업무를 금했다.
보고서는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때 루블화를 러시아의 유일 화폐로 규정한 법률에 위배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보고서 발표 얼마 후 러시아 정부는 비트코인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벨기에는 재무장관이 비트코인 규제 필요성을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상 첫 비트코인 ATM이 등장한 캐나다 역시 규제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에서도 이렇다 할 비트코인 규제 움직임은 없다. 그러나 최근 한 해커가 은행에 탈취한 고객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대가로 비트코인을 요구한 사건이 발생했다.
비트코인 자체가 돈세탁이나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각국의 화폐발행 시스템에 비트코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그러나 미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는 세상에 등장한 지 겨우 5년 된 비트코인이 화폐로 통용되기 위한 수순에 접어들었다고 평했다.
이번 조사를 의뢰한 카퍼 의원은 "비트코인 규제에서 미국이 아직 뒤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혹시 비트코인 규제에서 다른 나라들보다 뒤지지 않았나 하는 미 당국의 노파심은 기우라는 뜻이다.
카퍼 의원은 "비트코인과 다른 가상화폐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경제활동에서 점차 역할을 키워가고 있다"며 "이를 규제하려면 각국의 공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보고서를 미 국세청(IRS) 등 규제 기관들이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결국 비트코인에 정치권과 행정기관의 규제가 필요하지만 충분히 검토한 뒤 적시에 효과적인 방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달 뉴욕주에서 비트코인 청문회가 열렸다. 비트코인 관련 기업들에 인허가를 발급하는 방안에 대해 모색하는 자리였다.
청문회에서 뉴욕주 금융감독국(DFS)의 벤저민 로스키 국장은 "기업들이 가상화폐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만큼 규제 당국도 이를 외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는 비트코인이 이제 제도권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비트코인 거래 업체 서클인터넷파이낸셜의 제레미 올레어 최고경영자(CEO)는 그 동안 비트코인 업계를 대변해온 인물이다. 그는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비트코인이 통화수단으로서 규제 받기까지 10~20년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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