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차범근 SBS 축구 해설위원(61)을 인터뷰하기 위해 27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자택을 방문했다. 오후 한 시, 북한산 자락을 거슬러 올라 골목이 끝나는 곳에 차를 세우고 보니 강아지 몇 마리가 킁킁거리며 주둥이로 대문 맞은편 덤불을 헤집고 있었다. 차 위원은 인적 드문 언덕을 지나 산 중턱과 맞닿은 곳에 단정한 단독주택을 짓고 살았다. 주위 풍경과 어울린 평화로운 분위기가 차분한 그의 성격과 닮았다.
차 위원은 요즘 이 곳에서 2014 브라질 월드컵 해설 준비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해외리그 주요 경기와 유럽에서 활약하는 '코리안리거'의 경기를 빼놓지 않고 챙겨본다. 한국의 조별리그 상대 팀 분석도 중요한 일과다. 한 경기를 분석하는 데 세 시간 가까운 노력이 필요하다. 환갑을 지난 그는 "녹록지 않은 작업"이라며 껄껄 웃는다. 그러면서도 팬들에게 편하게 다가가는 해설을 목표로 분석에 매달린다. 그의 주 업무이자 가장 열정을 쏟는 일과다.
차 위원은 최근 공개 석상에서 지도자 은퇴를 암시했다. 열정의 부재를 고백하고 후배들을 위해 양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자는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싶었다. "어떤 일에 혼신의 열정을 쏟으면 똑같은 일을 못해요. 다른 동기유발이 있다면 모를까. 선수와 감독으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는데 다시 하려니까 끓어 오르는 무언가가 없어요. 지도자는 성적과 최상의 경기력을 이끌어내야 하는데 열정 없이 함부로 덤벼서는 안 되죠."
해설과 더불어 차 위원이 최근 열정을 쏟는 일은 커가는 손주들을 돌보는 할아버지의 역할이다. 가급적 오래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우회적으로 말하는 여유가 부러웠다. '차 감독'의 복귀를 기대하는 팬들에겐 서운한 소식이겠다. 대신 그는 "마음을 움직일 명분이 생긴다면 어떤 일이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족의 대 명절 설이다. 바쁜 일상에 잠시나마 쉼표가 생겼다. 열정을 기울일 무언가를 찾는 것도 의미 있는 새해맞이가 아닐까.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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