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 한국 건설업체들이 중동지역에서 '승자의 저주'에 걸렸다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가 5일(현지시간) 분석했다.
FT는 한국 기업들의 중동 진출 배경부터 자세히 전했다. 한국 건설사들이 5년 전부터 국내 건설 수요가 줄면서 발전소와 석유·가스건설 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중동으로 몰려갔다는 것이다.
삼성물산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시공한 162층, 828m 규모의 세계 최고층 건물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가 이 같은 노력의 결실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중동지역을 접수한 대가도 톡톡히 치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치열한 경쟁과 낮은 입찰가격으로 대형 한국 건설사들이 상당한 손실을 봤다는 것이다.
여기에 걸프만 지역에 대한 자본투자 전망까지 불확실하자 한국의 건설사들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로 진출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 건설사들의 제살깍기식 가격 경쟁이 알려진 것은 지난해 4월부터다. 한국 건설사들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UAE 등의 국가에서 계약을 따내기 위해 입찰 가격을 대폭 낮춘다는 것을 투자자들이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GS건설의 경우 지난해 세전순익이 2000억원(1억8800만달러)이 될 것으로 전망한 지 두 달 만에 906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순손실만 3860억원에 이른다고 FT는 지적했다.
삼성엔지니어링도 2~3분기 손실을 기록했고,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건설사들의 주식 가격도 폭락했다. 중동 지역에서 나쁜 소식이 들려올 것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재빨리 투매에 나선 탓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문제점을 찾았다. 유럽의 건설사들은 비용 전반에 프리미엄을 얻어 입찰가를 적어내지만, 한국 기업들은 수수료 합계를 추산, 유럽 경쟁사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입찰에서 성공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은 공사가 예정대로 진행되고, 비용을 최소로 유지할 경우에는 이윤이 남게 된다. 하지만 두 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만 어긋나도 심각한 손실을 얻게 된다는 설명이다. GS건설의 UAE 루와이쓰 정유소 공사와 삼성엔지니어링의 사우디아라비아 철강 공사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한국 건설사들의 2009~2011년 중동 입찰계약에 따른 손실은 2015년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FT는 익명의 전문가를 인용해 전망했다.
이처럼 중동시장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한국 건설사들은 아시아를 비롯한 다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대림건설이 중동 중심 비즈니스에서 벗어나 브루나이와 베트남 계약을 성사시켰고, 말레이시아에서 1조3000억원 규모의 발전소 공사도 수주했다. 삼성물산은 몽고의 국제공항과 호주의 59억달러 상당의 철광석 정제공장 건설을 맡았다.
일본 기업과 협력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미쓰비시와 손잡고 베트남에서 15억달러 발전소 공사를 수주했고, 대우건설도 도요 엔지니어링과 나이지리아에서 비료 공장을 함께 짓기로 했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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