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현장에서] 20일은 '파친'들의 크리스마스

시계아이콘읽는 시간43초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13일 동장군이 점령한 서울 종로 파고다(탑골) 공원은 가을 햇살이 한창인 때와 비교해 눈에 띄게 한산했다. 공원을 찾은 어르신들이 열 명도 채 안됐다. 종묘공원도 마찬가지였다. '그 섬, 파고다' 기획 시리즈가 끝난지 보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사이 한파가 몰아치면서 이곳에 나들이 하는 어르신 숫자가 확 준 것이다.


종묘공원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연신 춥다며 발을 구르는 기자에게 "자꾸 춥다니깐 나도 춥다"며 기자를 타박했다. '할아버지 추운데 뭐하러 나오셨어요'라고 묻자 "집에 있으면 뭘해"라는 심드렁한 답변이 돌아온다. 집에 TV도 없고 가족도 없고 벽만 있단다.

종묘공원에서 추위를 이기는 방법은 한 가지. 직사광선이 비추는 담벼락에 기대 햇볕을 쬐는 것이다. 할아버지들은 해바라기처럼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 붙박이처럼 서 있었다. '술을 마시면 속에 불이 나서 덜 춥다'며 종묘공원 앞 노점에서 대낮부터 술을 들이키는 어르신들도 있었다.


그나마 주머니 사정이 여유로운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온기를 찾아 인근 다방이나 카페로 흩어졌다. 공원에 다같이 앉아 있을 때는 몰랐는데 돈 있는 노인, 빈곤한 노인이 겨울을 나는 법은 이렇게나 다른가 싶다. 이날 기자가 찾은 '7080 라이브 카페'엔 점심시간이 지나자 할아버지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스타벅스엔 때깔 좋은 모직코트를 입고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할아버지 손님들도 있었다.

이처럼 겨울이 되면 파친(파고다 친구)들은 견우와 직녀 신세가 된다. 주머니 사정 탓에 할아버지들마다 동선이 달라져서다. 이랬던 분들을 위해 아시아경제신문이 파친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오는 20일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파고다 장수사진' 행사를 연다. 사진부 기자들이 어르신들의 사진을 찍어 주기로 한 것이다. 이날 만큼은 오랜만에 파친과 담소도 나누고 환한 얼굴을 기록에 남기시면 좋겠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