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그들이 조선 민족에게 강요한 것 중 특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천황'을 신으로 떠받드는 것이었다. 그 같은 거부는 그들을 부를 때 결코 '일본'이라고 하지 않고 '왜놈'이라고 했을 만큼 뼈에 사무친 반감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다. 조선 민족에게는 인간을 신으로 모시는 '현인신(現人神)'의 전통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역사에는 임금에 대한 복종은 있었지만, 그건 지상의 최고 권력자에 대한 그것이었지 비인간의 신으로 우러렀던 것은 아니었다.
지상의 인간에게 붙이는 최상의 극존칭은 성인이었다. 그래서 공자를 신격화하듯 모신 유학자들도 그를 성인으로 불렀을 뿐, 신인으로까지 높이지는 않았다. '현인은 성인을 모르고, 성인은 신인을 모른다'고 했던 말처럼 인간을 감히 신인으로, 천상의 존재로 올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일제가 물러가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에 다시 '신인'이 출현하려 하고 있다. 수십년 전에 세상을 떠난 어느 전직 대통령에 대해 '반인반신(半人半神)'으로 추앙하는 이들이 나온 것이다. 특히 이런 추앙 분위기가 일고 있는 곳이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양반 문화의 본산'이라고 일컬어지는 고장이라는 점에서 내겐 더욱 역설적으로 비쳐진다. 반인반신론이 이 고장 사람들이 동향의 인물이라는 점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는 퇴계 선생의 무덤을 둘러싼 시비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듣자하니 퇴계의 무덤이 초라한 것을 놓고 논란이 오갔다고 한다. 퇴계 묘소를 참배한 이들 가운데서 묘소가 너무 초라하다며 새로 단장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는 것이다. 퇴계의 묘소는 생전에 검소함을 강조한 선생의 유지를 받든 것인데, 그는 "내가 죽으면 비석을 세우지 말고 작은 돌의 앞면에 미리 지어둔 10자의 명(銘)만 새기라"고 했다. 그러나 초라할수록 더욱 위대해진 것이니 그야말로 역설이 아니겠는가.
반인반신으로 떠받들여진 그 '위인', 퇴계의 고장에서 나고 자란 그 인물도 이를 잘 알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그렇게 신인으로 높이는 것을 반기진 않을 듯하다. 지나친 숭배심이 오히려 자신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며 노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 일본 천황에 대한 추앙이 결국 천황 그 자신에게 화(禍)로 돌아왔듯, 자신들이 모셨던(그리고 지금 모시고 있는) 이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을 갖고 있는 우리 정치권의 일부(혹은 많은) 인사들은 그 지나친 숭배가 '그 분에게' 오히려 화(禍)가 될 것임을 부디 깨닫기를.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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