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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꽃게와 곶감

시계아이콘01분 05초 소요

집 냉장고를 열어보니 감을 잘라서 꾸득꾸득 말린 간식거리가 눈에 띈다. 포장 용기에 '곶감 말랭이'라고 표기돼 있다. '감 말랭이'를 잘못 적은 것이다.


곶감은 껍질을 깎은 감을 대꼬챙이나 싸리꼬챙이에 꿰어 말려 만들었다. 요즘은 건시를 만들 때 감꼭지(꽃받침)에 실을 매 줄줄이 말린다. 그래서 가공 기법 측면에서 곶감은 사라졌다. 머지않아 곶감이라는 단어가 쓰이지 않게 될지 모른다.

'곶' 계열 단어 중에 계속 쓰이지만 발음과 뜻이 굴절된 것이 꽃게다. 사전을 찾아보면 꽃게와 화해(花蟹)를 같은 단어라고 풀이한다. 껍데기가 꽃처럼 붉어서 꽃게가 됐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꽃게는 껍데기가 암갈색이다. 꽃게는 삶으면 껍데기가 붉어지지만, 꽃게를 삶지 않고 게장으로도 담가 먹기도 한다. 게장을 담그면 껍데기 색이 더 짙어진다. 삶는 요리에 따라 변한 껍데기 색을 보고 이름을 지었을 법하진 않다.


꽃게의 옛말이 곶게였다는 게 실마리다. '곶'은 과거에는 끝이 뾰족한 쇠나 나무의 명칭에 두루 쓰였다. 주로 '곳'으로 표기됐다. 곶은 곳치, 곳챵이로 변화를 겪었고, 여기에서 꼬챙이가 나왔다. 송곳은 설이 여럿으로 갈리지만, '곳'이 '곶'에서 왔음에는 이론이 없다. 동곳은 상투를 튼 뒤에 그것이 다시 풀어지지 않도록 꽂는 물건이다. 꽂다는 동사도 곶에서 나왔다.

곶게라는 이름의 유래는 18세기에 쓰인 책 '성호사설'에 나온다. 성호사설은 "속칭 곶게라고 하는데, 등딱지에 꼬챙이 같이 생긴 두 뿔이 있어서"라고 설명했다. 정약전이 19세기 초에 펴낸 '자산어보'도 곶게와 관련해 "두 눈 위에 한치 남짓한 송곳 모양의 것이 있어서 이런 이름이 주어졌다"고 전했다. 꽃게를 위에서 보면 정말 등딱지 왼쪽과 오른쪽에 뾰족한 뿔이 뻗어 있다. (조항범ㆍ'곶(串)' 계열 어휘의 형성과 의미에 대하여ㆍ국어학 63호)


꽃게의 이름은 20세기 전반에만 해도 오해를 사지 않았다. 1938년에 편찬된 '조선어사전'은 이 갑각류를 "가슴이 퍼지고 그 양쪽 끝이 불쑥 나온 모습"이라고 풀이했으니 말이다. 곶게가 꽃게로 바뀌면서 한자 이름 화해(花蟹)가 추가됐다.


세상이 변하면 말도 변한다. 지칭하는 사물이 그대로인데도 말이 변하기도 한다. 변화를 막을 순 없다. 다만 말의 유래는 한번 되짚어볼 만하다. 가치를 떠나 소소한 재미를 주는 일이다.






백우진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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