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시리즈(17)어르신 두번 울리는 '노인 관련 범죄'
가정불화·착취 등 피해자 해마다 증가
고독감·사회적 고립에 판단력 흐려져
몰래 빚 떠안고 전정긍긍, 가정파탄까지
[아시아경제 김동선 부장,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주상돈 기자] 파고다(탑골)공원과 그 일대의 어르신들을 취재하면서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기 및 학대 등 노인 관련 범죄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범죄는 아니더라도 가족, 특히 자식들에게 착취받는 사례도 노인들의 말 못할 고민거리다. 홍보관을 차려두고 인정 많은 노인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얄팍한 상혼부터 노인 부모의 노후자금을 야금야금 빼먹는 자식들까지 노인들의 얇은 주머니에 손을 뻗치는 '검은 그림자'는 다양하다. 노인들의 입에서 나온 직간접적인 피해 사례는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들의 경제상황을 더욱 힘들게 벼랑으로 내모는 안타까운 사연이 많았다. 피해 규모가 큰 경우도 많아 가족들이 알게 되는 경우 가정 불화로 이어지고 황혼녘에 가정 파탄에 이르기도 한다. 피해를 당한 노인들은 배우자와 자식들 눈치에 말도 못하고 홀로 속앓이만 하는 경우가 많다. 파고다 안팎에서 노인 착취 및 사기 피해 사례를 들여다봤다.
24일 파고다공원에서 만난 최모(81) 할아버지. 전북 익산이 고향인 할아버지는 스물한 살 때 서울에 올라와 서른 되던 해에 열살 아래인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슬하에 3남1녀를 뒀고 40대인 아들 둘은 아직 미혼이다. 결혼 후 8년 동안 남의 집을 전전하던 할아버지는 마흔이 채 되기 전에 서울 중곡동에 27평짜리 단독주택을 장만했다. 43년 전 할아버지가 38세 때란다. '27평짜리 단독주택'을 말할 때 할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어떤 자부심이 배어있었다. 옥탑방이 딸린 2층 단독주택은 최 할아버지의 전부다. 옥탑방은 세를 놔 다달이 30만원을 받아 생활비로 쓰고 있지만 일 층엔 반갑지 않은 손님이 묵고 있다.
"딸이 우리집 밑에서 살아. 망해 처먹고 갈 데가 없으니 여 와서 사는 거지. 자식년이 와서 사니깐 일 층에 세도 못 놓고…." 할아버지의 큰딸은 올해 마흔아홉이다. 같은 집에 살지만 대화는 별로 없단다. "잘 못하니깐 흉을 보지. 왜 흉을 보겠어." 숨이 찬지 말을 잇지 못하는 최 할아버지. 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뭐가 그리 화가 나는지 짚고 있는 지팡이로 바닥을 탁탁 두드린다. 그런 게 부모라지만 여든이 넘어서도 자식이라는 짐을 지고 살고 있는 것이다.
최 할아버지처럼 부모를 착취하는 자식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이 지난 6월 발간한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 학대 상담 건수는 정서적 학대(2134건)·신체적 학대(1326건)·방임(1042건) 등이 주요 유형이었으나 경제적 학대도 540건으로 9.7%에 달했다. 눈에 띄는 점은 학대행위자에 아들(41.2%)·배우자(12.8%)·딸(12.0%) 등이 며느리(6.5%)·친척(1.7%)·사위(0.7%)보다 많다는 점이다. 심지어 타인에 의한 학대(6.2%)는 적게 보일 정도다.
경찰청이 집계한 노인학대 신고건수도 2008년 213건, 2009년 190건, 2010년 111건으로 감소하다가 2011년을 기점으로 144건, 2012년 173건으로 증가하고 2013년에는 8월까지 집중단속으로 395건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노인학대라고 하면 노인에 대한 신체적·정신적 착취 또는 가혹행위를 떠올리지만 부모에게 손 벌리는 경제적 착취도 포함된다. 서울시 어르신상담센터의 상담 사례를 살펴보면 수천만원의 돈을 갈취한 아들에게 더 이상 돈을 줄 수 없다고 하자 아들이 욕설을 퍼붓고 때렸다고 호소한 노인도 다수다.
노인학대뿐 아니라 노인사기·폭력 등 노인관련 범죄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60세 이상 대상 범죄건수는 2009년 12만1618건, 2010년 10만6329건, 2011년 7만6624건으로 점차 감소 추세를 보이다가 2012년 12만6482건으로 다시 증가했다. 이는 2011년과 비교하면 65.5%가 급증한 것으로 2012년 기준으로 하루에 347건의 노인 범죄가 발생하는 셈이다.
특히 노년층을 상대로 한 사기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찰청이 최근 5년간 61세 이상 사기범죄 피해자 수를 집계한 결과를 보면 2009년 1만8981명, 2010년 1만7622명, 2011년 1만265명, 2012년 1만3083명, 2013년(1~10월) 1만2210명 등 노년층을 상대로 한 사기 피해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노후자금과 퇴직금을 노리는 각종 보이스피싱이나 홍보관, 여행 등을 미끼로 한 사기 범죄가 노년층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무심코 홍보관에 드나들었다가 가족 몰래 빚을 떠안고 전전긍긍하는 노인들도 있다. 경기도 평택에 사는 최영순(65·가명) 할머니는 전형적인 '홍보관 사기' 피해자다. 할머니는 늘 외로웠다. 남편은 아침에 나가 저녁 늦게 집에 들어오기 일쑤였고 아들은 결혼 후 따로 살고 있었다. 집에 홀로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우울증까지 걸릴 지경이었다. 이러던 차에 옆집 사는 동년배 주부가 '춤도 추고 노래도 가르쳐 주는 재미난 곳이 있다'고 할머니를 꼬드겼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처음 한 달은 옆집 주부 말처럼 홍보관이 삶의 활력이었다. 청년들과 노래도 부르고 게임도 하다 보니 젊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한 달가량 지나자 얼굴을 튼 남자 직원이 '복용하면 허리 아픈 게 없어진다. 염증을 완화시켜주는 효과가 좋아 암환자 등 수술한 사람들이 많이 먹는다'며 148만원 상당의 프로폴리스를 사라고 권했다. '자식한테 폐 안 끼치려면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에 프로폴리스를 구입했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들의 연이은 유혹에 할머니는 상어연골, 천삼, 수의 등을 구입하느라 6000만원을 써 버렸다. 이 돈을 충당하느라 홍보관에서 주선해 준 캐피털에서 돈을 끌어다 쓰기까지 했다. 할머니는 뒤늦게 '아차' 하는 마음에 환불을 요청했지만 그 홍보관은 이미 매장을 정리하고 떠난 뒤였다.
최 할머니는 "처음엔 단순히 재미로 갔던 것인데 어떻게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자신이 한심스럽고 후회막급일 따름"이라며 "가지고 있던 현금은 모두 썼고 앞으로 청구될 캐피털 할부청구와, 지로청구서 생각에 하루하루가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다"며 한숨을 지었다. 남편, 아들과도 사이가 멀어져 최 할머니의 가정은 현재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이들은 홍보관이나 체험관 등을 차려놓고 연예인 초청공연, 안마, 레크리에이션 등을 통해 노인의 혼을 쏙 빼놓고 화장지, 세제 등을 무상으로 나눠 주며 어르신들의 환심을 산다. 마음의 빗장이 풀렸다고 생각되면 화술 뛰어난 직원이 나와 속칭 '영업'으로 불리는 판매 활동을 개시한다. 싸구려 건강식품을 노인병 치료에 특효가 있다며 속여 파는 것이다.
한국노년복지연합(이하 한노연)에 따르면 이렇게 노인을 꾀어 불법상품을 파는 홍보관은 전국적으로 1만여개, 이곳에 드나드는 노인 수만 어림잡아 5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노인들은 왜 홍보관을 가는 것일까. 노정호 한노연 사무총장은 노년의 외로움을 달래줄 적절한 여가 문화의 부재를 꼽는다. 노 사무총장은 "외로운 노인들의 심리를 이용해, 아들뻘 되는 직원들이 시종 '어머니'라고 부르며 살갑게 굴면서 환심을 사고 이를 이용해 사기를 벌인다"면서 "노인 대상의 다양한 사기 수법과 발생 가능한 피해 유형을 사전에 교육시켜 사기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사기 피해를 입고도 자구책을 강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쉬쉬한다는 점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피해자의 신고 비율은 17.8%에 불과하다. 피해자 10명 중 신고자는 2명도 채 안 된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 18일 서울시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에서 70대 이상 노인 30여명을 대상으로 열린 '사기 예방 교육'에서 자신의 피해사실을 속 시원히 털어놓는 노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홍보관 현장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틀어주자 '맞아, 맞아'라며 맞장구를 치던 어르신들은 '홍보관에 가보셨느냐'는 말에 손사래를 치기 바빴다. 특강이 끝나자 '나중에 전화하겠다'며 특강을 진행한 직원의 명함을 받아간 할아버지, 할머니 수는 8명. 강연을 진행한 직원은 "저분들 다 분명 홍보관에서 물건을 한두 번은 사신 분들"이라고 귀띔했다. 이날 교육에 참석한 김모(73) 할머니는 "노인정에 있는 할머니들 따라서 서너 번 가봤는디 물건은 많이 안 샀어. 그냥 하루 춤추고 재미있게 노는 데 쓴 돈이라고 생각하면 아깝진 않아…"라며 말끝을 흐렸다.
피해금액이 몇천만원에 이르지만 남편, 아내 몰래 빚을 감당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사기당한 사실이 알려지면 자칫 가정불화로 이어질까 우려해서다. 실제 한노연이 모아놓은 피해상담사례를 살펴보니 '남편이 알면 맞아죽는다' '이혼당하고 자식들에게 쫓겨났다' '주부로서 남편 몰래 큰돈을 썼다. 돌려받고 싶다'며 속 끓는 노인이 여럿 있었다.
이 중 6000만원의 피해를 입은 유모씨에게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유씨는 남편이 알까 두려워 연락처조차 여동생의 전화번호를 남겨 놨다. 하지만 유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여동생은 '괜히 일 크게 만들었다가 형부가 알까봐 그냥 언니가 6000만원을 손해 보기로 했다'며 전화를 급히 끊었다. 레이저 치료기 등 수천만원어치의 물품을 구매했다는, 또 다른 피해자인 전모씨는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 남편에게 사실을 털어놨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니 더 이상 묻지 말아달라"며 더 이상의 통화를 거부했다.
유지웅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은 "노인이 사기에 취약한 것은 외로움, 고독감 등 정서적인 면을 파고들어 판단력을 흐트려 놓기 때문"이라며 "노인 사기피해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으로 고립된 노인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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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 파고다]20<끝>-②"탑골·종묘 주변, 세대공감 거리로 확 바꾼다" 서울시 밝혀
[그 섬, 파고다]20<끝>-③그 섬에 들어갈수록 이 사회의 무관심이 보였다
[그 섬, 파고다]20<끝>-④지면을 필름삼아 펜을 렌즈 삼아 다큐 찍듯 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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