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대섭 기자] 몇 달 전 국내 한 시중은행의 해외 점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국인 주재원들과 현지 고용 직원들이 영업 현장을 돌아다니며 구슬땀을 흘리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직원들은 영업성과를 올리기 위해 차량으로 2~3시간 이상 걸리는 산업단지 등을 수시로 찾아가 한국 은행의 장점을 소개했다. 외국계 은행업에 대한 현지 금융당국의 규제 속에서도 한국인 특유의 끈기와 성실함으로 현지 기업들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면서 점포 자산과 수익을 늘리는데 힘을 쏟았다.
당시 한 주재원의 말이 새삼 기억이 난다. 이 주재원은 해외에 직접 나와보니 현지 기업들을 고객으로 확보한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외국계 은행에 대한 현지 금융당국의 규제는 물론 현지인들에게 브랜드를 알리고 신뢰를 쌓는 과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 본사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가 필요함에도 해외 점포에 대한 평가를 단기적인 실적 중심으로 시행해 주재원들의 스트레스가 많다는 것. 그는 국내 은행들의 해외 점포 상당수가 실적에 대한 부담 때문에 무리한 영업이 이뤄질 수 있는 위험에 노출돼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주재원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국민은행 도쿄지점의 부당대출과 비자금 조성 의혹을 계기로 금융당국은 시중은행 해외 점포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기로 했다. 해외지점의 이상 징후를 조기에 포착할 수 있도록 모니터링 지표와 여신 규모 등 상시감시 지표도 강화할 계획이다.
이미 은행권에서는 단계적으로 해외 발령 인력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저금리ㆍ저성장으로 인한 영향으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보다 인력운영 비용이 더 큰 해외 주재원들은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시중은행 해외 점포에 대한 점검 과정에서 국민은행 도쿄지점과 같은 사건들이 추가로 드러나고 주재원 인력이 감축될 경우 각국의 현지 법인과 지점들의 분위기는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입행 후 처음으로 해외 점포에 연수를 가 크게 기뻐하던 은행원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다른 동기들에 비해 학벌이 떨어졌지만 외국어는 남들 보다 뛰어나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해외 주재원을 뽑는 시험에 응시해 연수기회를 잡은 그는 주재원 제도가 있다는 것에 매우 감사했다. 그리고 앞으로 해외에서 보다 많은 역할을 하고 싶다는 바람도 나타냈다.
현지에 혼자 거주하고 있다는 한 주재원의 말에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도 난다. 그는 자녀들의 학업 문제 때문에 몇 년째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혼자 있다는 것에 외로움도 많이 느꼈다고 한다. 그렇지만 주재원으로서 한국의 금융산업을 세계 속에 알리고 회사가 글로벌 금융회사로 성장하는데 한몫을 한다는 뿌듯함이 버팀목이 됐다. 그는 금융한류 전파의 선봉에 섰다는 자부심이 외로움을 이겨내게 해준 힘이 됐다고 말했다.
해외 점포의 불법영업에 대한 금융당국의 철저한 점검과 해당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은 반드시 필요하다. 금융 글로벌의 임무를 지고 최전선에서 싸우는 은행 주재원들의 활동이 위축돼선 안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대섭 기자 joas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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