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버스 기사들 '지입제'로 회사와 불공정 계약 노출
차량 소유권 이전 강요로 차 뺏기고 빚 떠안는 사례 늘어
"정부 차원 대책마련 필요"
[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전세버스 기사로 일해 온 금화섭씨는 전 재산 2000만원과 가족보증 대출을 받아 관광버스 1대를 구입했다. 일감을 내 주는 버스회사의 사장은 차량 명의를 회사 앞으로 등록할 것을 강요했고, 다른 차량 7대에 대해서도 연대보증을 설 것을 요구했다. 3개월 후 대표는 차량을 처분해 잠적했고 금씨는 2억7000만원의 빚을 떠안았다. 보증을 섰던 부친의 논밭은 모두 압류됐고 이 충격으로 모친은 세상을 떠났다.
# 2008년 인천광역시 G관광에서 일했던 유관하씨는 한진중공업 통근차량 고정배차 및 유류지원금 등 8개 항목을 약정 받고 지입계약을 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계약해지를 요구했다. 유씨는 회사 명의로 돼 있던 본인 구매 차량을 돌려 줄 것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강제경매를 실시해 버스를 매각해 버렸다.
전세버스 '지입제'로 고통받는 기사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세버스 시장에서는 이미 만연한 관행이지만 '불법'이라는 이유로 단속 외의 개입을 꺼려 온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가 피해를 더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입제는 운수회사에 개인 소유의 차량을 등록하고 일감을 받아 보수를 받는 제도다. 원칙적으로는 차량을 구매한 사람이 소유주가 돼야 하지만 전세버스의 경우 기사들이 구매한 차량을 회사명의로 등록하는 관행이 자리잡고 있다. '갑(甲)'인 버스회사를 통해 일감을 받아야 하는 기사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이를 받아들이지만 악용하는 사업주가 늘면서 피해가 점차 늘고 있는 실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전국에서 운영 중인 전세버스 업체는 1468곳으로 총 3만9235대의 버스가 등록돼 있다. 지난 1993년 면허제가 등록제로 전환되면서 활성화되기 시작한 전세버스 운송업은 이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중장년층을 빠르게 흡수했고 차량대수도 430% 가까이 증가했다.
업체 수와 시장규모가 커지면서 기사들에게는 더욱 불리한 구조가 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교통연구원이 140개 회사를 중심으로 지입제 운영실태를 조사한 결과 106개(74.5%) 업체가 '운영하고 있다'고 답했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이보다 높은 80~90%에 육박한 버스가 지입제로 운영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입제와 관련한 피해는 ▲차량 소유권 이전 강요 ▲차량을 담보로 한 대표의 임의 대출 및 유용 ▲고액대출 후 고의부도 ▲차량번호판 영치 및 차량 강제매각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입제를 통한 명의이전은 불법으로 돼 있어 적발되면 사업주와 기사 모두 처벌받는다. 이 때문에 기사들은 가족보증 등으로 2차 피해를 입거나 금액 규모가 커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돼서야 신고에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관련 당국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는 "지입제를 통한 명의이전 등은 모두 불법으로 규정돼 있어 피해자를 위한 적극적인 구제책을 마련하는 것은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역시 회사와 기사 간의 관계가 일반적인 고용주와 노동자의 범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입차주협회 측은 "국토부가 제시했던 총량제를 통한 시장진입규제 방안은 오히려 기존 업체들의 사업영역만 키울 수 있어 근본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며 "택시나 용달처럼 개별사업권을 부여해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개선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세버스 사업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안을 협의 중"이라며 "협동조합 형태로 회사설립을 가능케 하거나 현물출자 등의 투자방식을 다양화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단속 효과가 실질적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보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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