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건욱 기자]가수 박지윤이 대중들 곁으로 돌아왔다. 그의 컴백은 무려 1년 8개월 만이지만 그 시간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애벌레가 오랜 기간 고치를 거쳐 성숙하고 아름다운 나비로 화하듯. 그의 음악 인생은 사람이 평생에 걸쳐 성장하고 바뀌어간다는 옛말처럼 긴 시간을 거쳐 지속적으로 변해왔기 때문이다.
박지윤이 소녀 감성이 물씬 풍기는 1집 앨범으로 데뷔해 가수활동을 시작한 게 지난 1997년이다. 이후 그는 2·3집 활동기간을 포함해 3년이 지나서야 4집 '성인식'을 통해 매혹적이고 반전적인 여성미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박지윤은 그 기세를 몰아 2003년 6집 활동까지 끝낸 후 긴 공백기에 돌입했고 7집 앨범을 내기까진 6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당시 그는 1인 음반기획사를 차리고 7, 8집 앨범을 통해 '싱어송라이터'로 변신,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로 우리 귀를 깜작 놀라게 만들었다.
그런 박지윤이 1년 8개월 만에 전문 프로듀서 윤종신과 함께 앨범을 만든 것이다. 그는 이번엔 기획과 제작의 짐을 모두 내려놓고, 진정한 '보컬리스트'로서의 맨얼굴을 가지고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그런 말 많이 들어요, 정말 오랜만이라고. 요즘 젊은 그룹들은 앨범 사이에 휴지기간이 짧잖아요. 그런 트렌드를 고려하면 당연한 반응이죠. 하지만 준비 기간이 개인적으로는 길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7집부터 계속 하고 싶은 음악을 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요즘 추세는 신경 쓰지 않고 여유 있게 작업에 집중하기 위한 시간을 가졌죠."
"사실 음반활동을 쉬는 중에도 연기는 틈틈이 계속 했어요. 드라마 출연하느라 노래를 쉬는 게 아니냐는 말이 들리던데 그건 오해죠. 저는 원래 배우로 연예계에 데뷔했어요. 연기는 제게 시작점이고 음악과 같이 계속 가는 것이지 외도나 새로운 도전이 아니에요. 저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가수이자 배우죠."
박지윤은 긴 공백 기간에 대해 예상보다 더 별것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세월이 그에게 여유라는 힘을 준 것인지, 데뷔 17년차 가수 박지윤은 어떤 유행을 창조해야 한다는 의무감보다는 자기가 가진 것을 발굴하고 키워가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새롭게 들고 나온 앨범은 대체 어떤 종류의 것일지 자연스레 호기심이 일었다.
"7·8집 때는 사실 앨범을 냈으면서도 방송활동은 거의 안 하고 공연만 했죠. 덕분에 마니아층은 형성됐지만 대중적인 인기와는 점점 멀어졌어요. 아예 활동을 안 했다고 오해하는 팬들도 많아요. 그래서 이번 앨범 콘셉트는 대중성에 초점을 맞췄죠. 아직 박지윤이 '트렌디'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요. '싱어송라이터'보다는 '보컬리스트' 본연의 모습으로 다가갈 거예요. 노래도 다 전문 작곡가들에게 받았어요. 전반적으로 경쾌한 '팝' 장르의 곡들이죠. 댄스까진 아니더라도 '그루브'한 느낌이 많이 나요."
박지윤은 이번 앨범이 일 년에 걸쳐 공개할 4개의 미니앨범 중 첫 번째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낼 3장의 앨범은 팬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곡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그런 시도는 "대중성을 염두에 두면서 내 음악을 하겠다"는 다짐과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중성'과 '아티스트 자신만의 스타일'은 어찌 보면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의 관계 같기도 한데, 박지윤은 그 미묘한 합의점을 어떻게 찾은 것인지 궁금했다.
"그게 다 윤종신 오빠 덕분이에요. 1인 기획사를 차리고 혼자 다 할 때는 정말 많은 걸 경험했어요. 또 그만큼 부족함도 많이 느낀 게 사실이죠. 그 때 든 생각이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거였어요. '미스틱89'에 들어오면서 스스로를 무겁게 만들던 짐들을 덜어내고 보컬리스트로서 좀 더 본연의 임무에 집중할 수 있었죠. 종신오빠는 가수를 주관의 늪에 빠지지 않게 이끌어주면서도 개별적인 특성을 존중해줄 수 있는 프로듀서라고 생각해요."
박지윤은 변화의 한 지점에 선 자신의 정체성을 '보컬리스트'라고 표현했다. 그는 남이 입혀주는 옷을 걸치던 가수 초년생 시절을 지나며 오랜 음악적 방황 끝에 지난 2009년 '싱어송라이터'의 길에 들어섰다. 그리고 지금 박지윤은 자신을 더 깊은 성숙으로 이끌기 위한 방법으로 '순수 보컬리스트'의 옷을 입게 된 것이다. 그는 섹시 여가수의 이미지도, '싱어송라이터'의 이미지도 모두 다 자양분이 돼 지금의 결과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미래는 모르는 것"이라며 앞으로 또 다른 변화의 가능성도 숨기지 않았다.
"활동하는 후배들을 보면 특히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요즘 매체들이 '24시간이 모자라'로 인기인 선미를 저와 많이 비교해요. 청순한 이미지로 시작해 '섹시 여가수' 콘셉트로 부각이 된 점을 말이죠. 일단 스타일만 놓고 보면 정말 박진영 오빠답죠. 메이크업이나 무대 연출이 화려하고 멋져요. 사람들이 원래 진영오빠가 솔로 여가수 콘셉트로 그런 것만 좋아한다는 편견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섣부른 단정은 곤란하지 않을까요. 그 친구는 이제 1집을 냈을 뿐인데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말이 씨가 된다고, 박지윤이 프로듀서 박진영을 언급하자 둘 사이의 깊은 인연이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음반제작자와 가수, 스승과 제자, 친한 오빠와 동생 중에 박진영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내리고 있을지 물었다.
"진영오빠 지난 10일에 결혼했잖아요. 신랑신부 둘 다 정말 행복해보여서 보는 저도 좋았죠. 마냥 부럽던걸요. 참, 제가 결혼식 축가를 불러줬어요. 진영오빠가 소속사 가수들도 많을 텐데 기어코 제게 부탁하던걸요. 관계요? 같이 작업하는 동안 음악에 관해 정말 많은 걸 배웠죠. 스승이란 말도 어울리는 것 같네요.
박지윤은 박진영의 결혼식을 이야기하며 살짝 들뜬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연애나 결혼 계획에 대한 질문에 "연애도 그렇고 결혼도 그렇고, 또 앨범 작업도 마찬가지고 때 됐다고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이나 그런 마음을 어필할 계기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대답해 그야말로 우문현답을 연상케 했다.
"사실 이번 신곡의 가사 내용이 뭔가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픈 여자의 마음을 담고 있어요. 주인공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보내는 메시지일수도 있겠지만, 이 노래를 앞으로 듣게 될 팬들에게 보내는 제 마음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죠. 일단 오랜만에 앨범이 나왔으니 당연히 좋은 반응을 얻고 싶어요. '보컬리스트'로서 새 출발이란 심정으로 만들었으니, 여기저기서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겠죠. 부디 잘 부탁드려요."
박건욱 기자 kun111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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