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성희 기자] 계열사 자금 수백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검찰이 징역 6년을 구형했다. 공소장이 일부 변경됐지만 검찰의 구형은 지난 7월29일 때와 동일하다.
3일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문용선) 심리로 열린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재판부의 요청에 따라 예비적 공소사실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본건 범행의 핵심은 계열사 출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것에 있다. 그 주체는 그룹의 회장인 최태원임이 명백하므로 최 회장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징역 6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어 최재원 부회장에게 징역 5년,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에게 징역 4년, 장모 SK그룹 전무에게 징역 3년을 각각 구형했다. 이 역시 당초 진행된 결심공판 때와 다르지 않다.
검찰은 “최 회장 형제 측은 김준홍의 진술이 번복되고 있는 것을 이유로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도둑질을 시킨 사람이 도둑질을 해온 사람에게 왜 도둑질 했느냐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 주장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구형에 앞서 진행된 증인신문에서 김준홍 전 대표는 1심과 검찰조사 당시 최태원 회장 형제의 관여도를 낮추기 위해 최 회장 측 변호인단의 전략에 따라 거짓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이는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이미 자백한 내용이다. 김 전 대표는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기 전까지는 본인과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이 짜고 주도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검찰은 또 결심공판에 이르러서까지도 김원홍 증인신문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최태원 회장 측 의견에 대해 “이를 빌미로 1심에서와 같이 지속적인 위증을 통해 재판을 계속해서 지연시키려 하는 것 같다”며 “불필요한 절차를 끌어들여 처벌을 회피하고 범행을 은폐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피고인에 대한 범죄가 명백히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현 단계에서 김원홍의 증언은 본건 유무죄 판단 및 양형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불필요한 절차로 혈세를 낭비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날 최태원 회장은 최후진술에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죄송하다. 후회하고 자책한다”면서도 “개인적 투자 목적이든 동생을 위해서든 회사재산인 펀드출자금을 유용하기로 김원홍과 공모한 사실이 없다. 그 내용을 듣지도 못했다”면서 횡령 혐의를 부인했다.
최 회장은 이어 “김원홍과의 관계를 솔직히 다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고 그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지만 다 털어놨다. 이 정도 진실을 미리 밝히지 못해 후회가 된다”면서 그의 역할을 부각시켰다.
또 최 회장은 “피고인들이 일부러 돈을 유용하겠다는 생각으로 범행을 저지르진 않았을 것 같다”면서 “시키는 대로, 각자 자기 역할을 하다 보니 이 일이 일어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충분히 납득할만한 실체가 나오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김원홍 전 고문의 증인신청이 기각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최재원 부회장은 “1심에서 진실을 그대로 밝히지 않고 거짓 증언한 점 죄송하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반성하고 있다”는 말을 짧게 전했다.
최 회장 등에 대한 선고공판은 오는 27일 오후 2시 417호 법정에서 열린다.
앞서 최 회장은 SK텔레콤 등에서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출자한 펀드 선지급금 450억여원을 중간에서 빼돌려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게 송금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최 회장과 범행을 공모한 혐의 등으로 김준홍 전 대표는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았고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양성희 기자 sungh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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