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제가 모시던 상사 앞에서 재계약을 위해 면접을 봐야 하는 심정? 이해되세요?"
오는 12월이면 '임기제 공무원'의 이름을 달게 될 지방계약직 김기성 씨(가명). 17년째 지방관공서에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오는 12월이 되면 계약직공무원에서 임기제 공무원으로 이름을 바꿔 단다. 정부가 공무원 직제 개편을 지난달 입법예고하면서 계약직 공무원을 임기제 공무원으로 변경한다고 했고 오는 12월 시행에 들어간다. 정부는 임기제 공무원으로 바뀌면 '임기 만큼' 신분이 보장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처우개선, 정규직 공무원과 차별은 바뀌지 않는다. 계약직 공무원을 임기제 공무원으로만 부를 뿐 기간(임기)이 지나면 다시 계약하는 것도 변함이 없다.
◆"모시던 상사 앞에서 다시 면접 봐야 하는 자괴감"=김 씨는 "17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뛰고 일했다고 생각한다"며 "5년이 지나면 내가 모시던 상사와 외부전문가 앞에서 다시 면접을 보고 채용된다는 게 너무 부담스럽고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김 씨는 그나마 다행이다. 17년 동안 이른바 '잘리지 않고' 잘 버텨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주변 동료들의 경우 재계약 되지 못하고 대책 없이 훌쩍 떠나는 사례를 많이 봤다. 김 씨는 "유능한 전문가 인재를 공무원에 뽑는다는 취지가 무색하다"며 "지금까지 나의 경우는 살아서 연명하고 있지만 일순간 직장을 잃어버린 계약직 다른 동료들의 재계약은 업무능력과 무관했다"고 토로했다. 재계약 기간이 돌아오면 정치적 입김에 의해 한순간 일자리를 잃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더욱이 해고되는 시점이 한창 일을 해야 할 때라 더욱 슬프다고 했다. 김 씨는 "10년 넘게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일자리를 잃게 되는 나이가 40~45살"이라며 "그들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는데 그 나이에 해고되면 다시 들어갈 직장조차 없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인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처우개선과 차별 철폐를 없애기 위한 시스템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계약직을 정규직화하는 국가 정책방향과 다르게 공무원 직종개편에서 계약직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며 "그 이유는 정부든 국회든 계약직 공무원 편에서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우울해 했다.
◆"이름 바꿔 줬으니 감사해야 하나?"=또 다른 지방계약 공무원 이진아 씨(가명). 이씨는 13년 동안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해 왔다. 석사학위를 취득한 전문가이다. 그러나 그는 5년마다 재계약 절차를 거쳐 왔다. 5년마다 '신입 공무원'으로 다시 채용되는 셈이다.
이 씨는 "공직 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차별과 신분불안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계약직에 대해서 이름만 임기제로 바꿔놓고서 계약직을 없앴다고 하는데 감사해야 하나요?"라고 되물었다. 그는 "'임기'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아니면 적어도 군수님 정도는 돼야 붙여주는 걸로 알고 있다"며 "계약직 공무원의 계약기간을 '임기'라는 번듯한 이름으로 바꿔줬으니 그것에 만족하라는 것 같은데 정말 '눈 가리고 아웅'하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박근혜정부는 비정규직, 계약직 철폐를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아직 차별과 신분 불안에 대한 당사자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어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는 박근혜정부가 지금의 불합리한 구조에는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고 있다. '슬프디슬픈 그들만의 노래'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문제점 해결해야"=국회입법조사처는 16일 '임기제 공무원과 전문 경력관의 주요 내용과 향후 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임기제 공무원의 경우 기존 계약직 공무원과 차별화되는 부분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한 뒤 "명칭만 계약직 공무원에서 임기제공무원으로 바뀌었을 뿐 유형, 임용절차, 처우, 임기(계약기간), 임기연장(계약연장) 등은 계약직 공무원과 달라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기제 공무원의 경우 일반직내 타직렬과 보수형평성을 고려해 봉급표를 신
설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