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온통 세금 이야기이다. 8월의 무더위와 함께 찾아온 '2013년 세법 개정안'을 두고 국민들의 속이 타 들어간다. 부채질을 하고 선풍기를 틀고 에어컨을 가동해도 씻겨나가지 않는 무더위처럼 세금 이야기에 국민들은 지쳐가고 있다. 이번 세법 개정안을 두고 많은 국민들, 특히 봉급생활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부자와 대기업에 대한 과세는 강화하지 않으면서 서민·중산층의 부담만 키웠다는 울분이다.
세금은 더 걷어가면서 기획재정부는 "증세는 아니다"라고 말해 타들어가는 가슴에 기름을 부었다. 평소 증세와 관련 소신을 가지고 있는 인천대 경제학과 황성현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해외 로밍중인…"이라는 음성이 흘러 나왔다. 미국에 체류 중인 황 교수와 전화 연결이 됐다. 황 교수는 "정부의 세법 개정안에 가장 큰 문제는 '증세는 없다'는 기본 명제에서 출발하면서 세목 신설과 세율 인상이 없었으니 증세는 아니다라고 하는 자기변명에 있다"며 이는 '아주' 잘못된 것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황 교수는 "내가 국어사전을 찾아봤다"고 전했다. 오래간만에 국어사전을 펼쳐보았다. "증세([增稅):[명사]세금을 늘리거나 세율을 높임"이라는 뜻풀이가 나왔다. 기재부 세제실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이번 세법 개정안을 두고 "증세라고 하면 세목신설, 세율 인상 등으로 세금이 늘어나는 것을 말한다"며 "이번 세법 개정안은 비과세·감면 축소와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 등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세율을 높임'이라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증세는 아니다"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분명 증세라는 명사에는 '세금을 늘리거나'라는 부분이 있다. 이번 세법 개정안으로 4000만~7000만원 봉급생활자들은 연간 16만원의 세금이 늘어날 예정이다. 세금이 늘어났으니 "증세가 아니고 뭐냐"는 국민들의 불만이 나오는 대목이다. 정확한 지적이다. 같은 세법 개정안을 두고 정부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증세는 아니라네"라고 말하고 국민들은 그 손가락을 보며 "증세가 맞는데 왜 자꾸 아니라고 하지?"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이 대목에서 진나라 환관 조고의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진시황제가 사망하자 조고는 능력 있는 태자 부소를 죽이고 주관도 없고 다루기 쉬운 어린 호해를 황제로 삼았다.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택군(擇君, 신하가 왕을 선택함)을 한 것이다. 조고는 호해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권력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여기서 그 유명한 지록위마(指鹿爲馬)가 나온다. 조고가 자신과 뜻을 같이 하지 않는 신하들을 제거하기 위해 사슴 한 마리를 호해에게 바치면서 "이것은 말입니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말이 아니고 사슴"이라고 정확히 말하는 신하들은 죽음을 면치 못했다. 이런 공포정치가 펼쳐졌으니 권력자인 조고가 말이라고 하자 주변에 서 있던 신하들은 앞다퉈 사슴을 말이라고 답했다.
증세를 둘러싸고 무더운 8월을 지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세법 개정안은 분명 '증세'가 맞다. 이제 말장난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금은 걷는 게 아니라 내는 것이다.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세금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국민적 합의와 동의가 절실한 8월이다.
세종=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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