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넥센은 선발투수 가뭄에 시달린다. 장원삼(삼성), 고원준(롯데) 등을 내보내면서부터 생긴 불치병이다. 올 시즌 강윤구(6승3패 평균자책점 4.49), 김영민(4승4패 평균자책점 5.11)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토종 선발감은 없다. 그나마 문성현(1승2패 평균자책점 8.27)이 최근 역투로 단비의 조짐을 보였다.
염경엽 감독은 갈증을 달랠 청량제로 신인 조상우를 점찍고 있다. 아직 중용하진 않는다. 1군 마운드에 오른 건 겨우 세 차례(4이닝). 이 가운데 선발 등판은 전무하다. 성적이 부진했던 건 아니다. 평균자책점과 피안타율은 모두 준수한 편에 속한다. 각각 2.25와 0.200이다.
그럼에도 염 감독은 11일 조상우를 1군 명단에서 제외했다. 넥센 선발투수진이 총체적 난국에 빠졌단 점을 감안하면 얼핏 이해하기 힘든 결정. 하지만 숨은 뜻이 담겨있다. 선수와 팀의 미래를 먼저 내다본다. 차세대 에이스로 키워 현재 겪는 약점을 최소화하겠단 복안이다.
조상우는 에이스의 기질을 충분히 갖췄다. 186cm, 92kg의 체구에서 최고 시속 156km의 강속구를 던진다. 1이닝 무실점을 남긴 지난 10일 목동 한화전에서도 154km의 빠른 볼을 던졌다. 그러나 볼 배합은 매우 단조로웠다. 총 15개의 공에서 시속 147km~154km의 패스트볼이 차지한 비율은 87%였다. 변화구는 시속 125km의 슬라이더 2개를 던진 게 전부였다.
볼 배합은 문제되지 않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강속구를 던지는 신인투수들은 자신의 힘을 믿고 패스트볼을 많이 던진다. 문제는 제구다. 패스트볼 위주의 투구에도 이날 스트라이크는 7개밖에 되지 않았다. 경기 직후 염 감독이 “아직 멀었다”며 탄식을 내뱉은 주된 이유다.
그 원인으로 염 감독은 거듭 투구 자세를 지적했다. 조상우는 공에서 손이 떠날 때 머리를 왼쪽 아래로 세게 흔드는 버릇이 있다. 염 감독은 “포수 미트를 보지 않고 고개를 흔드니 제구가 좋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2군에서 몇 번을 던진다고 나아질 투구가 아니다. 직접 폼이 교정될 수 있도록 도와 내년 선발투수진의 한 축을 맡기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6월부터 염 감독은 조상우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엔트리에 등록하지 않으면서 1군 선수단과의 동행을 지시했다. 이번 말소에도 조상우는 2군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여전히 투구를 직접 관찰, 관리하겠단 염 감독의 의지다. 실제로 염 감독은 조상우의 피칭 때마다 불펜을 찾아 문제점을 지적, 보완한다. 취재진에 양해를 구하고 약속된 인터뷰 시간을 미룰 만큼 적극적이다.
염 감독은 “고개를 흔드는 습관을 버려도 패스트볼의 구속은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평균 148km 정도가 나온다”며 “일정한 릴리스만 갖춰도 충분히 놀라운 투수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 이어 “(큰 투수로 성장하려면) 변화구로 스트라이크를 넣을 수 있는 기량 정도는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인투수에게 투구 폼 교정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마추어 시절 승승장구하며 쌓은 고집은 물론 그간 가진 야구에 대한 생각을 전부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염 감독의 과외수업은 빛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언제부턴가 제자가 수업 자세를 달리 하고 있다.
지난 10일 등판이 약이 됐다. 한때 “(실전에 나서지 못해) 어깨가 근질근질하다”며 조급함을 드러냈던 조상우는 실전 투입 뒤 투구 폼 교정의 필요성을 깊게 절감했다. 경기 뒤 그는 꽤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투구에 30점을 주고 싶다. 빠른 구속이 나왔단 점을 제외하면 소득이 없었다. 특히 변화구를 던질 때마다 힘이 들어갔다. 한 달 만에 마운드를 서다 보니 나도 모르게 힘이 많이 들어갔다. 많은 걸 알려주신 염 감독님에게 죄송하다. 배운 대로 투구를 하지 못했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다음 투구에서 가르침에 부응하려면.”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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