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영화 '더 테러 라이브'를 '생방송 도중 펼쳐지는 뉴스 앵커와 테러범과의 사투'라고 정리하면 뭔가 찜찜한 구석이 남는다. 97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정신없이 질주하는 이 영화는 한국 사회의 많은 부분을 과감하게 건드리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과도한 속보경쟁과 시청률 싸움, 무기력한 공권력, 지배층이 하층민을 대하는 태도, 한국 사회의 차별과 불평등 등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 녹여낸 비판의 메시지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된 상황에서도 관객들에게 여러 화두를 던진다.
입소문만으로 개봉 일주일 만에 3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는 이 영화는 신인감독 김병우의 장편 데뷔작이다. "2001년 9.11 테러가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있다"는 김 감독은 "테러와 미디어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2008년부터 시나리오 작업에 돌입했다. 뭔가 새로운 걸 추구하고 있던 그에게 '테러범과 영웅(경찰, FBI 등)의 대결'이란 할리우드 영화의 공식은 전혀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극중 비중이 90% 이상이나 되는 주연배우 하정우에게 주인공의 감정변화를 1~10까지의 그래프로 그려 전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제작발표회 당시 하정우는 "감독이 직접 배우의 감정선을 꼼꼼하게 그래프로 그려준 감독은 처음 봤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설국열차'와 붙었는데도 흥행세가 좋다. 어느 정도 예상했나?
-시나리오를 4년 전부터 쓰기 시작했으니까, 개봉 때 즈음에는 관객들이 과연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의구심은 있었다. 예쁜 여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다른 흥행코드도 없는 채 속도감으로만 채워진 영화인데, 오히려 이 부분을 관객들이 새롭게 여긴 것 같다. 영화 작업을 시사회 당일 새벽 5시에 마쳤다. 첫 완성본을 보면서 실수하고 잘못된 것들이 계속 눈에 밟혀서 '저거 어떡하지?'하는 심정이었다. 물론 기분도 좋지 않았고. 근데 시사회 반응이 좋아서 마음이 놓였다.
▲영화는 배우 하정우의 역량에 전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는데, 캐스팅은 어떻게 진행이 됐나?
-처음 생각했던 주인공의 이미지는 훨씬 심심하고 보다 앵커에 가까운 이미지였다. 여자 앵커도 생각해봤는데 리스크가 너무 클 거 같았다. 바꾸길 잘했다. 하정우는 캐릭터에다 유머를 가미해줬다. 극 중에서 처음에는 여유있는 모습, 빈정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다 마지막에 궁지에 처한다. 캐릭터가 보여주는 감정의 폭이 넓어서 배우 한 사람이 나오더라도 관객들이 지루해하지 않게 됐다. 주인공이 방송 중일 때와 방송 중이 아닐 때 확연하게 달라지는 모습도 재밌다. 캐스팅은 제작사 이춘연 씨네2000대표가 했고, 직접 하정우를 만난 것은 가을 쯤 중국집에서였다.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으면서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특별히 하정우에게 요구한 사항은?
-뭔가를 요구하기 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영화에 대한 생각을 모두 털어놓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모든 흐름을 '윤영화'라는 인물이 끌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촬영 콘셉트, 음악, 소품 등 모든 생각을 다 공유했다. 한 달 정도는 매일같이 만나서 시나리오를 붙잡고 얘기했다. 한 챕터를 한 컷에 찍다 보니까 사전 준비를 그만큼 철저하게 했다. 그러다보니 슛이 들어가면 감독이나 스태프는 무조건 하정우를 믿고 맡기는 분위기였다.
▲마포대교 테러를 두고 방송사들이 속보경쟁을 하는 장면과 그러다가 뜬금없이 경쟁사의 허점을 탄로하는 방송사 앵커의 장면 등 미디어의 속성을 굉장히 잘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러'라는 소재에는 뉴스, 미디어가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테러는 미디어가 있어야 가능한데, 이 상관관계를 따라가다 보니 배경은 방송국으로, 주인공은 뉴스 앵커로 정했다. 테러범의 폭탄 입수 과정이라든지 개연성에 관한 부분은 편집 과정에서 아깝게 삭제됐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속도감, 직진하는 힘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첫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인데, 감독을 해본 소감은?
-정말 외롭더라. 물론 배우들도 잘 만났고, 스태프들과도 소통이 잘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짊어지고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았다. 진짜 외로웠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계속 '남들이 하지 않은 이야기'에 대해 다뤄보고 싶다.
조민서 기자 summer@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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