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어경선 칼럼]"행복주택 결사반대!"

시계아이콘01분 42초 소요

[어경선 칼럼]"행복주택 결사반대!"
AD

"저, 여기 서명 좀 해 주세요." 며칠 전 일이다. 아파트 같은 동에 살고 있는 한 아주머니가 종이와 볼펜을 내밀며 동ㆍ호수와 이름을 적고 사인을 해 달라고 했다. 남편은 가끔 아파트 흡연구역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는 '끽연 동지'다. 해서 부인과도 '안녕하세요' 정도의 인사는 나누는 터다. 그렇다고 허물없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다. 그런데, 정색을 하고 불쑥 서명을 부탁한다? 무슨 일인가.


사연은 이렇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경의선 가좌역 옆 K아파트다. 그의 말인즉 정부가 가좌역 철도부지에 행복주택을 짓는다고 하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는 것이다. '싸구려 임대주택'이 들어서면 교통 체증에 주거 환경이 나빠져 '우리 아파트' 값이 떨어질 게 뻔하지 않느냐. 행복주택을 막아야 한다. 반대 서명을 해서 주민의 뜻을 알려야 한다. 그러니 댁도 동참하라, 그런 얘기다.

박근혜정부의 핵심 주거안정 공약인 행복주택 사업이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행복주택은 철도부지와 유수지를 활용해 노인과 신혼부부, 사회 초년생, 대학생 등에 작은 임대주택을 주변 시세보다 싼값에 공급하는 사업이다.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돕는 것은 물론 중산층이 거주하는 도심지역에 서민도 함께하는 공동체로서, 사회통합을 꾀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런데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와 주민의 반대가 심하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서울 오류, 가좌, 공릉, 경기 고잔 등 4개 철도부지와 서울 목동, 잠실, 송파 등 3개 유수지 등 7곳을 시범 사업지구로 선정했다. 시범지구 7곳 가운데 가좌지구를 뺀 6곳이 취지에는 찬성한다면서도 반대 의견서를 냈다. 서울시의회도 지난 12일 '행복주택 일방추진 중단 촉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반대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사업지를 주민과 자치구의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점을 든다.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러나 '지역 이기주의'도 간과할 수 없다. 목1동의 경우 인구과밀화와 교통대란, 유수지 해체로 인한 안전성 문제 등을 내세운다. 속내는 '교육특구' 이미지가 훼손되고 집값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다른 곳도 사정은 비슷하다. 겉으론 교통난 등 주민 불편을 앞세우지만 지역 슬럼화, 부동산 가치 하락을 걱정하기는 매한가지다.


유일하게 반대 의견서를 내지 않은 가좌지구는 어떤가. 정부는 가좌역 철도부지에 650가구를 지어 대학생들에게 공급할 계획이다. 선로 위에 데크를 씌워 철길로 나뉜 서대문구 남가좌동과 마포구 중동, 성산동을 잇는 브리지 시티를 만든하고 한다. 주민은 대체로 대학생이 기숙사처럼 이용하는데 슬럼화할 이유도, 집값이 떨어질 일도 없을 것으로 본다.


소비성향이 높은 대학생들이 오면 인근 모래내 시장 등 상권에 도움이 되고 철도로 나뉜 두 지역이 데크 브리지로 연결되는 등 득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때문에 K아파트보다 단지가 훨씬 큰 H아파트나 P아파트, 또 다른 H아파트 등에선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반대 서명에 동참하라는 말에 적잖이 당황한 까닭이다. 그래도 반대하는 주민을 막을 수는 없다. K아파트 정문엔 지금 '행복주택 결사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정부가 주민의 반대를 '지역 이기주의'로만 치부하고 사업을 밀어붙이면 갈등만 더 커진다. 합당한 의견은 수용해 임대주택 물량을 축소하는 대신 공원이나 도서관 등 커뮤니티 공간을 확대하는 대안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안 된다는 생각도 바람직하지 않다. 집을 소유와 재테크의 대상으로 여기는 한 서민용 임대주택 정책은 자리 잡기 어렵다. 반대에 앞서 찬성 의견도 귀담아듣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어경선 논설위원 euhk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