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를 크게 둘로 나누면 통상 이마가 넓어지는 '주변머리'가 부족한 쪽과 가운데가 횅한 '소갈머리'가 없는 쪽으로 구분되는데, 내 경우 후자에 속한다. 어려서부터 집안 남자 어른들의 듬성듬성 또는 반질반질한 두상에 익숙한 터라 어렴풋이 예감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남 일'이 '내 일'로 닥치고 보니 상황이 그리 간단치 않았다.
대머리에 대처하는 방법 역시 크게 둘로 나뉜다는 걸 알게 된 건 좌절과 울분(30대), 그리고 번민과 고뇌(40대)의 긴 터널을 거친 후였다.
먼저 달관을 가장하는 방법이 있으니, 지금은 간신히 붙어있으나 장래가 불확실한 것들을 과감히 제거하여 얼굴과 머리의 구분을 없애는 것이다. 쉽게 말해 빡빡 미는 것인데 얼굴이 작고 안경을 쓰면 지적으로 보이는 장점이 있다.(마하트마 간디의 사진을 떠올려보시라!) 그러나 내 경우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불명확하지만) 얼굴이 큰데다 이목구비가 불분명하다보니 소기의 성과를 얻기 힘들었다. 유행에 따라 변하는 헤어스타일에 일일이 곁눈질 할 일 없고 샴푸 쓸 일도 없고 두루두루 편했지만 주변의 원성이 자자했다. 거울을 자주 보지 않는 나는 무신경했으나 내 얼굴을 매일 봐야하는 집사람의 불편이 컸던 것이다. 한 밤중에 갑자기 일어나 내 얼굴과 마주치면 (그 것이 정면 또는 측면, 아니면 뒷면 어느 쪽이든 무관하게) 가히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나 뭐라나. 나 하나 편히 살자고 가족을 고통에 내모는 건 사내대장부가 할 일이 아니라고 믿었기에 두 번째 선택, 즉 현대의학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것들을 잘 보살피는 한편 기능이 멈춘 모근을 자극하여 다시 한 번 털을 밀어 올리도록 촉진하는 것인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하루 두 번씩 환부(글쎄 이걸 환부라고 해도 되는 걸까)에 바르고 톡톡 두드리면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는 약(이걸 약이라 부를 수 있는 걸까)을 구입해 바르고 두들겼지만 놀라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신비한 약초의 엑기스를 첨가한 한방 샴푸를 써보기도 했지만 '소갈머리'가 환생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서 획기적인 신약이 개발됐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그로부터 흥미진진한 일상사가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글=치우(恥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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