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어제 발표한 농협은행 종합검사 결과를 보면 과연 은행으로서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검사 결과에 따르면 은행 자체 규정으로 금지한 고위험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냈다. 정상적인 의사결정 절차를 밟지 않고 해외펀드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봤다. 대출해 주면서 멋대로 제3자인 담보 제공자에까지 연대보증 책임을 지웠다. 이런저런 10여건의 은행법 위반 등 부정이 적발돼 은행에 대한 '주의' 조치와 함께 임직원 28명이 문책당하고 2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다.
농협은행의 사고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에는 해지된 신용카드 발급 신청서 등 고객 정보 1만여건이 담긴 전표를 파기하지 않고 고물상에 돈을 받고 넘긴 일도 있었다. 문제가 되자 급히 회수해 파쇄함으로써 고객 정보 유출은 막았다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지난 3월20일 해킹에 노출돼 전산망이 마비되는 등 농협은행은 벌써 몇 차례 전산 사고를 일으켰다. 금융감독원은 전산망 마비와 고객 정보를 고물상에 넘긴 사건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고객 정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걸핏하면 전산망 장애를 일으키고, 규정을 어기면서 고객에게 엉뚱한 부담을 지우고, 내부통제 없이 투자했다가 손실까지 냈으니 은행으로서 낼 만한 사고 유형은 거의 다 저지른 셈이다. 그럼에도 농협은행은 금감원 검사 결과에 대해 "직원 수가 많다 보니 실수하는 부분도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은행과 계속 거래하려는 고객이 과연 얼마나 될까. 고객 입장에서는 사고가 빈발하는 금융기관에서 돈을 빼내 다른 데로 옮기려 들 것이다.
금융기관은 고객 신뢰가 존립 기반이다. 농협으로선 서울 한복판에 거대한 사옥을 짓고 준비되지 않은 해외진출을 꾀하기 이전에 내부통제 시스템 정비와 직원 교육부터 강화해야 한다. 괜한 경쟁심이나 과욕을 부리기보다 실력부터 다지는 게 먼저다. 지금 농협에 절실한 것은 허우대만 멀쩡한 '글로벌 대형 은행'이 아닌 고객 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고객을 제대로 대접하는 '내실 있는 토종 은행'이다. 유사한 사고가 멈추지 않으면 '실력이 부족한' 금융사업을 접고 농민을 위한 협동조합 본연의 경제(농산물 유통ㆍ판매)사업에만 전념하라는 조합원들의 요구가 거세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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