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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설사의 추억(2)

시계아이콘01분 12초 소요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걸로 알고 있어요." 홍보팀 직원인 예쁜 그녀는 내게 설명했다. 상하이의 택시에는 운전석을 플라스틱으로 두른 보호칸막이가 되어 있었다. 낡고 때묻어 부연 플라스틱 저쪽에 앉은 운전기사는 목을 뻣뻣이 세워, 마치 접골을 위해 깁스를 한 환자처럼 느껴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목구멍 저 아래쪽에 있는 가래침을, 그응하는 소리로 긁어올려 창 밖으로 툭 뱉곤 했다. 그때, 문득 뱃속에서 미약한 신호가 왔다. 이건 SS(설사)의 징후다. 아랫배 부근을 살짝 긁고 지나가는 귀여운 통증. 이건 결코 귀여운 상대가 아니다. 경험으로 보건대 대재앙의 신호는 늘 사소하다. 거북한 통증이 차츰 파상적으로 노크를 하기 시작한다. 겁이 덜컥 났다.


SS가 최악의 낭패를 맞을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추고 있지 않은가. (1)택시는 목적지를 모르고 있다. (2)정상적으로 가도 아직도 50분 이상을 가야 하는데, 그것보다 더 걸릴 가능성이 지금으로선 훨씬 높다. (3)택시를 세워서 화장실을 찾아달라고 말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4)정 급한 경우 은신처라도 찾아야 할 텐데 이 낯선 땅에서 그런 걸 찾을 수 있을까. 혹시 이 나라에선 그런 '비상 행위'에 대해 엄단을 하는 시스템은 아닌가. (5)모든 것이 가능하다 해도 저 사나워 보이는 '가래침 택시기사'가 나를 도와줄까. (6)오히려 택시를 거칠게 몰면서 내 배를 자극하고 있는 상황이다. (7)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인데, 옆에선 예쁘기도 한, 그녀가 방싯방싯 웃고 있다. SS는 자아와 우주를 독대(獨對)하게 한다. 존재를 격침시키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듯한, '지능'을 가진 소용돌이. 그의 준동(蠢動)을 늦추려고 일단 허리 벨트를 한칸 늦춘다. 이제 때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녀에게, 차를 세워보라고 말할까? 말할까? 말할까?


그때 나는 문득 SS가 신의 프로그램의 일부라는 생각을 해냈다. 그렇다면 이 다급한 상황 또한 일종의 테스트가 아니겠는가. 심호흡을 활용해보기로 했다. 들숨과 날숨을 내쉬면서, 이곳이 상하이인 것을 잊고, 내 옆에 앉은 여자도 잊으려 했다.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몇 번을 했을 때 놀랍게도 마음이 가라앉고, 위장의 폭풍도 슬금슬금 주저앉았다.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 나는 창 밖을 둘러보았다. "참, 숲이 많네요. 건물도 특색있고...아름다운 도시네."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녀는 반갑게 내 말을 받는다. "그쵸, 그쵸? 기자님. 정말 잘 오셨죠?" 우리의 호텔이 저만치 보인다. 이제 살았다.


<향상(香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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