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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나는 '좀'이로소이다

시계아이콘01분 09초 소요

조선 실학의 큰 산맥인 성호 이익의 250주기를 맞는 올해 그를 기리는 추모와 기념사업들이 잇따르고 있다. 선생은 인격에서도 높은 성취를 보여줬는데, 신분을 가리지 않고 평민까지 제자로 받아들이고 벌을 치고 농사를 지으며 스스로 실학을 실천한 지행합일로써 많은 후학들이 그를 사표로 삼았다. 늘 "우리 형제를 바른 길로 이끌어 준 것은 성호 선생"이라고 했던 정약용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사실 다산은 그로부터 직접 배우지 못한 건 물론 만난 적조차 없었다. 그럴 것이 그가 태어난 1년 뒤에 성호는 세상을 떠났는데, 그럼에도 정신적 사제의 생과 사의 잇는 듯 엇갈린 기연은 조선 지성사의 한 섭리였던 듯하다.


성호 선생은 당시 현실을 냉철히 비판하며 그 병폐를 '6두'로 진단했는데, 이 '두'는 하찮은 벌레인 좀을 뜻하는 것으로, 문벌주의 등을 조선을 갉아먹는 좀이라고 봤던 것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렇듯 하찮은 벌레, 벌레 중 특히 쓸모없고 해를 끼치는 것이 좀이지만, 그러나 스스로를 좀이라고 한 이가 있었으니, 그는 성호와는 다른 측면에서 또한 조선의 큰 지성을 이룬 이다. 재작년엔가 지리산 자락 여행길에 들렀던 어느 고택에서 그 옛 주인은 자신을 일러 '일두'라고 했는데, 그는 다름아닌 해동 5현(五賢) 중 한 분인 정여창 선생이다. "나는 한 마리 좀이다." 그러나 나는 그 호에서 오히려 저택의 위용을 압도하는 기품과 위엄을 보았다. 그건 자신에 지극히 엄격했던 이들이 주는 감동이었다. 스스로를 낮추고자 할 때 오히려 높아지며, 높이고자 할 때 낮아지리라는 옛말의 진실을 깨우쳐 준 것이었다.


실로 그렇잖은가. 우리는 물러나고자 하는(退溪) 이에게서 더욱 진취의 기상을 보게 되며, 겨울에 발벗고 냇물을 건너기를 머뭇거리고 사방에서 위험이 닥쳐오고 있음을 두려워한(與猶) 이에게서 누구보다 치열한 정신을 보며, 그믐달처럼 사리에 어둡다(晦齋)고 한 이에게서 세상을 비추는 빛을 보며, 꽉 찬 섬이 아닌 '빈 섬'이라고 함으로써 그 이름에서부터 하나의 시를 쓴 어느 시인에게서 충만함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태양이며 바다라고 한(日海) 어떤 이에게서 우리는 그 대담함을 찬탄하는 한편 하나의 교훈을 얻는다. 어떤 것의 과시는 오히려 그 결핍과 부재를 더욱 뚜렷히 보여줄 뿐이라는 것, 그것이 우리 모두가 그로부터 배워야 할 해와 바다만큼 크고 넓은 교훈일 것이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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