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국내 기업이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비자금을 조성하는 방법이 시간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다.
이번에 명단이 공개된 기업인들 모두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거래를 했거나 거래를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자금 조성 등 의혹이 제기된 기업들은 해외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에 대한 감독당국의 추적이 어렵다는 점을 적극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기업 오너가 대주주로 있는 지주사가 직접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기 보다는 국내 계열사를 통해 우회하는 방법으로 국세청 등 사정당국의 추적을 따돌리고 있다.
비자금 조성 또는 역외탈세를 일삼는 전형적인 거래구조는 지주회사에 소속된 계열사가 홍콩, 싱가포르 등에 계열사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데서 시작한다. 계열사와 페이퍼컴퍼니의 실질적 거래를 추적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용, 수출규모를 부풀리거나 국내 계열사에 거래대금이 들어온 것으로 꾸며 1차 자금을 조성한다. 추적이 어렵기 때문에 고액의 세금부담도 덜 수 있다.
1차로 조성된 자금은 제3의 페이퍼컴퍼니로 이전된다. 이른바 편취수익 이전을 통해 추적을 사실상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제3의 페이퍼컴퍼니는 케이만 군도를 비롯해 조세회피지역에 설립돼 회사의 존재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CJ가 계열사를 이용해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의 소재지인 '버진 아일랜드' 역시 전형적인 조세회피지역 중 한 곳이다.
조세회피지역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가 조성한 2차 자금은 대주주의 해외 비자금으로 활용되거나, 외국인 투자 형태로 국내에 유입된다. 국내에 유입된 자금은 대주주의 기업 지배구조 강화에 주로 활용돼 왔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외국계 IB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비자금 조성과정 등은 사실상 추적이 어렵다"며 "페이퍼컴퍼니 자체가 어떻게 설립돼 현재 어떤 사업을 하는지 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회계법인 관계자 역시 "기업들이 활용하고 있는 해외 페이퍼컴퍼니는 국내 감독기관의 역량과 권한을 넘어서는 영역에 있다"며 "회계감사에서도 기업이 제공하는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전했다.
임철영 기자 cy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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