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임선태 기자]국내 법학계에서는 배임죄를 독일 나치 및 일본 군국주의의 산물로 보기도 한다. 배임죄 자체가 독일 나치시대 사회기강 확립을 위해 정치적 목적으로 도입됐다는 판단에서다.
이후 군국주의 시대에 일본이 이를 이어 도입했고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법을 근거로 무비판적으로 배임죄를 도입, 현 사회상을 담는데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식이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배임죄는 독일에서 처음 입법돼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도입된 범죄 유형"이라며 "공통점은 우리나라보다 앞서 배임죄를 도입한 독일, 일본의 경우에도 배임죄 성립 요건이 한국보다 엄격하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1532년 카로리나 형법전 제 170조에서 유래한 배임죄는 1871년 독일제국형법 제 266조로 이어졌다. 당시 나치 치하의 초기 배임죄는 행위자에 대한 규정이 엄격했다. 배임죄가 성립되는 행위자의 종류를 후견인ㆍ관리인ㆍ재산보호인ㆍ유언집행자 등 한정적으로 열거함으로써 경제상황에서 악덕과 타락에 대한 대책만을 마련한 것이다.
실제 지난 1933년 개정된 최근 독일형법 배임죄 조항은 ▲법률, 관청의 위임 혹은 법률행위에 의해 수여된 타인의 재산을 처분하는 행위 ▲타인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권한을 남용하는 행위 ▲법률ㆍ관청의 위임ㆍ법률행위 혹은 신임관계에 의해 부여된 타인의 재산상의 이익을 보호하는 의무를 위반해 본인이 그 재산상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자에게 손해를 가하는 자로 행위자를 명백히 제한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1880년 형법전에는 배임죄 규정 자체가 없었다. 1907년 개정형법전부터 등장한 배임죄 규정의 현행 성립 요건은 '타인을 위해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자기 혹은 제 3자의 이익 또는 본인에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그 임무에 위배한 행위를 하고 본인에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 경우'다. 이 밖에 주식회사의 임직원 등이 배임죄를 범할 경우 일본 회사법상 특별배임죄를 적용 받는다.
일본 배임죄가 우리나라 배임죄와 가장 구별되는 점은 배임죄를 '목적범'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최준선 교수는 "일본법상 배임죄는 분명 자기 혹은 제 3자의 이익 또는 본인에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라는 표현으로 배임죄를 목적범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우리 형법이 배임죄의 구성요건에 이와 같은 주관적 구성요건 요소를 두고 있지 않은 점과 대비된다"고 언급했다.
미국법상에는 배임죄 대신 미국연방법률인 '우편사기죄'를 통해 이를 규율하고 있다. 애초 우편사기죄는 '우편 혹은 전신 등을 이용해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를 상대로 거대한 이익을 쉽고 빨리 편취할 수 있는 범죄'를 염두에 뒀다. 이처럼 미국법에서는 '범죄가 존재하는데 처벌이 없는' 사각지대를 두지 않는 방향으로 관련 법이 설계됐다.
박민영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는 "미국법상 경영판단의 원칙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이 원칙은 회사의 이사가 충분한 정보에 근거해 이해관계 없이 그리고 성실하게 회사의 이익에 합치한다는 믿음을 갖고 경영에 관한 판단을 한 경우, 비록 그 판단이 부적절한 판단이어서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초래했더라도 그러한 판단을 이사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김형성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적법절차에 따른 경영판단 행위에 대해서는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경영판단의 원칙 조항을 상법에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며 "미국 판례가 인정하고 독일 주식법에서 인정하는 경영판단 원칙을 도입해 '경영판단의 경우에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문구를 넣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임선태 기자 neojwal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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