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템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호가…지난해 거래 규모 1조5000억원
[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리니지 게임을 즐기는 직장인 A(33)씨는 매달 게임 아이템 구매에 평균 50만원 이상을 소비한다. 게임에 큰 돈을 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현실 사회에서 더 좋은 대학을 다니거나 더 나은 직업을 갖기 위해 경쟁하는 것과 같다는 게 그의 논리다. 리니지 같은 장수 게임은 성장한 캐릭터와 아이템을 몇배 비싼 가격에 팔수 있어 용돈벌이도 된다. 오늘도 A씨는 한달치 월급에 상당한 액수의 '검' 구매를 위해 지갑을 열었다.
인기 온라인 게임의 아이템이 수십만원에서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 아이템 현금 거래가 '벌' 받을 일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례가 나온데 따른 변화다.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자산 가치라는 조명과 함께 비용과 노력을 투자한 사용자의 권리라는 인식도 아이템 거래를 부추긴다.
6일 국내 게임 아이템 중개사이트 아이템매니아에 따르면 지난달 게임머니 최고가는 922만6000원, 아이템 최고가는 리니지2가 630만원에 거래됐다. 아이템 현금거래란 게임 이용자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얻은 아이템이나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되파는 것을 일컫는다. 국내 게임 시장에서 한해 거래되는 게임 아이템 규모는 지난해 기준 1조5000억원이다. 지난해 전체 게임 시장의 규모가 8조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시장의 비중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이템 거래를 중개하는 한 온라인 업체의 경우 회원수도 650만명에 달한다.
거래 금액도 부르는 게 값이다. 리니지의 칼 아이템인 '집행검'은 한 중개사이트에서 2500만원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검의 꽃이라 불리는 '4집행검'은 1억2000만원을 호가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주어지는 아이템과 달리 희소성이 높은 '레어템'의 경우 '부르는 게 값'이라 할 정도로 고가에 거래된다"고 말했다.
아이템 거래를 중개하는 사이트는 아이템베이, 아이템매니아 등이 있다. 중개업장은 최근 3년간 연평균 성장률 5% 수준으로 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업계 추산 규모는 수수료를 내고 거래되는 합법적인 경매액만 집계된 것으로 아이템 거래를 생업 삼는 꾼들이나 개인간의 직접 거래까지 더하면 시장은 이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게임 아이템의 현금 가치 산정에는 게임의 흥행과 이용자 수 등이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 게임의 인기가 높을수록, 또 사용자 수가 많을수록 거래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단가도 올라간다. 수요와 공급 법칙도 존재한다. 게임사들은 사용자가 늘면 아이템 공급을 늘리고 반대로 사용자가 줄면 공급도 줄인다. 게임머니와 현금 환전 비율을 위한 게임사의 '인플레 조절'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게임 사용자의 입장에서 아이템 거래는 소비가 아닌 투자의 개념이다. 예를 들어 엔씨소프트의 리니지와 같이 13년째 장수하는 인기게임의 아이템의 경우 재화 가치가 유지된다. 한 번 구매하면 투자한 만큼 나중에는 몇 배 비싼 가격에 되팔수도 있다.
게임 아이템 거래는 불법 시장이 아니다. 사행성 게임이 아니라면 게임 아이템과 머니 등을 거래하는 것이 위법이 아니라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합법시장으로 인정받는다. 이들 중개사이트는 거래를 주선하는 게임 파생산업에 속한다. 게임사들의 시선은 떨떠름하다. 이용자들이 아이템을 통한 돈벌이 유혹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해 약관으로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한때 이들 중개사이트들이 게임산업협회 가입을 시도했지만 게임산업군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게임 아이템 거래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많은 게이머들이 수수료 등의 이유로 인해 공식 거래 사이트를 이용하지 않고 개인 간 거래를 하기 때문이다. 일명 '먹튀'라 불리는 거래 사기는 아이템을 서로 거래하기로 해놓고 돈만 받은 뒤 종적을 감춰버린다. 이 경우 아이템 거래 내역 등이 남지 않기 때문에 사기를 당해도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일부 거래 사이트들에서 거래 상한선을 두지 않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거래액 상한선이 마련되지 않아 '부르는 게 값'이 되는 사행성 이슈를 제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규제 정국 속에서 게임이 이용자에 미칠지도 모르는 역기능에 시선이 몰리면서 게임 아이템 거래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국내 게임산업의 추정 매출액이 10조5300억원으로 성장했다"며 "시장 성장성을 고려해 아이템 거래에 대한 명확한 거래 규정과 정책적 미비를 바로 잡는 움직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유진 기자 t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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